한국교회 부흥의 증인: 한 사람의 생애로 읽는 한국교회 부흥운동 - 이태희 목사
이태희목사 · 김영애 · 입력
한국교회 부흥의 증인: 한 사람의 생애로 읽는 한국교회 부흥운동
# 01 이태희 목사
한 시대의 불꽃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가
― 한국교회 부흥운동의 현장으로 들어가다
프롤로그
한 사람을 기록한다는 것
역사는 숫자로만 기억되지 않는다.
몇 명이 모였는가.
몇 명이 예수를 믿었는가.
몇 개의 교회가 세워졌는가.
몇 차례의 집회가 열렸는가.
물론 그것도 역사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한 시대를 설명할 수 없다.
역사의 어느 순간에는 숫자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사람이다.
하나님께서 한 시대를 움직이실 때 언제나 사람을 통하여 일하셨기 때문이다.
1907년 평양의 장대현교회에서 시작된 회개의 불길도 그랬고, 1970년대 한국교회를 뒤흔들었던 부흥의 물결도 그랬다.
그리고 그 부흥의 현장에는 말씀을 들고 전국을 누빈 사람들이 있었다.
오늘 우리가 기록하려는 사람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다.
이태희 목사.
그의 이름 앞에는 여러 수식어가 붙는다.
부흥사.
목회자.
민족복음화운동의 지도자.
그러나 한 사람의 생애를 역사라는 긴 시간 위에 올려놓고 바라보면 그 이름은 조금 다르게 보인다.
그는 한국교회 부흥운동의 한 시대를 통과해 온 증인이었다.

▲ 1977년 민족복음화 대성회 이태희목사
1. 부흥의 시대가 오고 있었다
1970년대 한국은 지금과 전혀 다른 나라였다.
경제는 성장하기 시작했지만 사람들의 삶은 여전히 팍팍했다.
산업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고 도시는 팽창하고 있었다.
농촌을 떠난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들었다.
가난에서 벗어나려는 사람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 시대의 교회에는 오늘날 우리가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또 하나의 풍경이 있었다.
기도하는 사람들이었다.
새벽이면 교회로 사람들이 모였다.
밤이 깊어도 기도의 불은 꺼지지 않았다.
기도원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부흥회를 찾아 전국을 이동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말씀을 듣기 위해 밤새 자리를 지키는 성도들도 있었다.
한국교회에는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었다.
1973년 빌리 그레이엄 전도대회.
1974년 엑스플로74.
그리고 1977년 민족복음화대성회.
이 일련의 사건들은 한국교회 현대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장면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그 시대의 한복판에서 이태희라는 한 청년이 부흥사의 길에 들어섰다.
1975년이었다.
주간기독신문은 2015년 이태희 목사님의 성역 40주년을 소개하면서 그가 1975년 부흥사로 헌신했다고 기록했다.
그것은 단순히 한 목회자의 사역 시작 연도가 아니었다.
한국교회 부흥의 거대한 물결이 일어나고 있던 시기에 한 사람이 자신의 인생을 그 물결 한가운데 던진 순간이었다.
2. 그런데 그의 출발은 평탄하지 않았다
여기에서 우리는 이태희 목사님의 이야기를 조금 천천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그의 생애에는 한국교회 부흥운동을 이해하게 만드는 매우 중요한 역설이 있기 때문이다.
부흥의 사람으로 알려진 그의 인생은 처음부터 부흥의 사람으로 시작되지 않았다.
2005년 당시 보도된 이태희 목사님의 30주년 관련 기사에는 그의 젊은 시절을 비교적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경기도 안성 출신.
청년 시절에는 한때 주먹세계에 몸담기도 했다.
그리고 그의 인생에 결정적인 변화가 찾아온 곳이 있었다.
한얼산기도원.
그곳에서 이천석 목사의 설교를 접했다.
그리고 그것이 그의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고 당시 기록은 전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그가 처음부터 특별한 사람이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사람의 눈으로 보면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것이라고 쉽게 생각하기 어려운 인생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이 보지 못하는 곳에서 사람을 준비시키신다.
성경은 이것을 수없이 보여준다.
모세도 그랬다.
다윗도 그랬다.
베드로도 그랬다.
바울도 그랬다.
하나님은 완성된 사람을 찾아 사역에 투입하시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부르시고, 깨뜨리시고, 훈련하시고, 사용하신다.
이태희 목사님의 인생에서도 그러한 전환점이 있었다.
3. 한얼산에서 만난 말씀
한얼산기도원은 한국교회 부흥운동사를 이야기할 때 빼놓기 어려운 공간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이천석 목사가 있었다.
학술연구에서도 이천석 목사의 사역은 기도운동, 회개운동, 성령충만을 향한 촉구, 치유사역이라는 특징으로 정리된다.
이태희 목사님은 바로 그 이천석 목사의 영향을 받았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그는 한얼산기도원에서 혹독한 신앙훈련을 받았고, 그 과정을 거쳐 신앙인으로 변화되었다. 그리고 이후 총신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인생의 방향이 바뀐 것이다.
주먹을 사용하던 손이 성경을 잡기 시작했다.
사람을 두려움으로 움직이던 삶에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삶으로 방향이 바뀌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발견한다.
부흥사는 강단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강단에 서기 전에 한 사람의 인생이 먼저 하나님 앞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사람 앞에서 설교하기 전에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인생이 무너져야 한다.
그리고 바로 그곳에서 사명이 시작된다.
4. 1975년, 강단에 서다
신학을 공부한 후 그는 1975년부터 대중집회를 인도하기 시작했다.
당시 자료는 그의 집회 사역이 폭발적인 열정과 영성을 바탕으로 전개되었다고 평가한다.
그리고 그 시기는 한국교회 역사에서도 특별한 시기였다.
1973년.
1974년.
1977년.
한국교회 전체를 흔드는 거대한 집회와 부흥운동이 이어졌다.
1977년 민족복음화대성회는 한국교회가 교파의 벽을 넘어 민족 복음화를 외쳤던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되어 있다.
당시 자료에 따르면 1977년 8월 15일부터 18일까지 열린 이 성회에는 여러 교단과 교회, 기관이 참여했고 민족복음화운동본부는 이 성회를 계기로 1978년 창립되었다.
이태희 목사님은 바로 이 시대에 부흥사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그의 이야기를 개인적인 성공담으로만 읽어서는 안 된다.
그의 생애를 따라가다 보면 그 시대 한국교회의 모습이 함께 보인다.
5. 부흥사는 시대를 건너는 사람이다
부흥사는 한 교회 안에만 머물 수 없다.
한 지역에만 머물 수도 없다.
사람이 부르면 가고,교회가 부르면 가고,기도하는 곳이면 간다. 그것이 부흥사의 길이었다.
2015년 국민일보는 이태희 목사님의 40년 사역을 소개하면서 그가 부흥사로 전 세계 여러 나라를 다니며 집회를 인도해 왔다고 기록했다.
그리고 2015년 뉴욕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는 그가 과거 자신의 집회 사역을 회고하면서
초창기 사역의 강렬함과 자신의 신앙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여기서 오히려 한 가지가 눈에 들어온다.
그는 자신의 과거를 자랑으로만 이야기하지 않았다.
초창기의 뜨거움을 돌아보았다.
첫사랑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것을 회복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고 고백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기록이다.
부흥의 사람에게도 부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에게 성령의 불을 이야기했던 사람에게도 자신의 심령에 불이 다시 타오르는 것이 필요하다.
수많은 사람에게 회개를 외쳤던 사람에게도 자신이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부흥사를 단순한 ‘스타 설교자’가 아니라 부흥의 증인으로 만드는 것이다.
6. 교회를 세우다
부흥사로 전국을 다니는 것과 지역교회를 세우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부흥회에서는 짧은 시간에 강력한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
그러나 목회는 다르다.
한 영혼을 만나야 한다.
그 영혼의 가족을 만나야 한다.
울고 있는 성도를 만나야 한다.
병든 사람을 만나야 한다.
떠나가는 사람도 붙잡아야 한다.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을 말씀으로 세워야 한다.
이태희 목사님은 1979년 서울 답십리동에 성복교회를 개척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후 교회가 빠르게 성장했고 성전 건축으로 이어졌다는 당시 보도도 확인된다.
여기에서 그의 사역은 또 하나의 모습을 갖게 된다.
부흥회와 목회.
밖으로 복음을 전하는 사람인 동시에 안에서는 양을 돌보는 목회자였다.
이 두 가지가 함께 있었다.
7. 그리고 민족복음화라는 더 큰 이름
이태희 목사님의 생애를 기록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 있다.
민족복음화운동본부.
1977년 민족복음화대성회의 정신을 이어가기 위해 1978년 한국교회의 대표적인 목회자들이 중심이 되어 민족복음화운동본부가 창립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태희 목사님은 훗날 이 단체의 2대 총재가 되었다.
2015년 주간기독신문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이 약 10년 전 2대 총재로 취임했다고 회고했다.
그리고 이 사역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2026년에도 민족복음화운동본부는 이태희 목사를 총재로 소개하며 2027년 8천만 민족복음화대성회를 준비하고 있다.
여기에서 놀라운 장면 하나가 나타난다.
1975년.
부흥사로 사역을 시작한 한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50년이 지난 지금.
그 사람은 여전히 민족복음화를 이야기하고 있다.
시대는 바뀌었다.
교회도 바뀌었다.
사람들의 생활도 바뀌었다.
미디어도 바뀌었다.
그러나 그가 붙들고 있는 단어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복음.
부흥.
전도.
성령.
그리고 민족복음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