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인사이트 특별기획 ③ 성경은 경제와 화폐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곽영민목사 · 곽영민 · 입력
돈의 주인은 하나님이며, 인간은 청지기다

돈은 인간의 삶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현실이다.
우리는 돈으로 먹을 것을 사고, 집을 마련하며, 자녀를 교육하고, 병원을 찾는다. 국가도 기업도 교회도 경제활동을 떠나 존재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성경은 돈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성경은 돈 자체를 악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돈을 어떻게 사용하느냐, 그리고 돈을 누구의 것으로 인정하느냐가 중요하다고 가르친다.
디지털화폐와 CBDC를 논하기 전에 먼저 이 질문에 답해야 한다.
"돈의 진짜 주인은 누구인가?"
돈 자체가 악은 아니다
성경은 돈 자체를 악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문제가 되는 것은 돈에 대한 인간의 잘못된 태도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경고한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딤전 6:10)
여기서 중요한 것은 돈 자체가 아니라 돈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돈이 하나님보다 높은 자리에 올라갈 때 문제가 시작된다.
돈이 목적이 되고 하나님이 수단이 되면 인간의 가치관은 무너지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성경적 경제관의 출발점은 단순하다.
돈을 섬기지 말고 하나님을 섬기라는 것이다.
모든 것의 궁극적인 주인은 하나님이다
성경은 인간이 소유의 절대적인 주인이 아니라고 가르친다.
시편 기자는 선포한다.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시 24:1)
우리가 가진 재산도, 시간도, 능력도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인간에게 주어진 것은 소유권만이 아니라 청지기의 책임이다.
따라서 경제생활 역시 신앙생활과 분리될 수 없다.
돈을 버는 방법도 중요하지만,
돈을 사용하는 방법은 더욱 중요하다.
그리고 돈을 사용하는 목적은 더 중요하다.
청지기 정신을 잃어버린 경제
오늘날 사회는 끊임없이 인간에게 말한다.
"더 많이 가져라."
"더 많이 소비하라."
"더 좋은 것을 가져야 행복하다."
그러나 성경은 다른 방향을 제시한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재산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 생명이 풍성해지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눅12:15)
이 말씀은 오늘날 디지털 금융 시대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화폐가 지폐에서 디지털 형태로 바뀐다고 해서 인간의 탐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기술이 발전할수록 돈을 대하는 인간의 마음이 더욱 중요해진다.
화폐의 형태보다 중요한 것은 화폐에 대한 통제다
금화 시대에도 인간은 탐욕을 부렸다.
지폐 시대에도 인간은 탐욕을 부렸다.
전자금융 시대에도 인간은 탐욕을 부린다.
따라서 문제의 본질은 화폐의 모양이 아니다.
화폐를 누가 발행하고, 누가 관리하며, 어떤 규칙 아래 사용되는가가 중요하다.
CBDC 역시 마찬가지다.
디지털화폐가 도입된다고 해서 그것 자체를 선악의 기준으로 판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새로운 금융 시스템이 국민의 자유와 개인정보, 경제적 선택권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는 반드시 질문해야 한다.
교회가 이 질문을 던지는 것은 정치적 반대가 아니다.
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지키기 위한 시민적·윤리적 질문이다.
편리함이라는 이름으로 자유를 잃어서는 안 된다
디지털 금융의 가장 큰 장점 가운데 하나는 편리함이다.
현금을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
스마트폰 하나로 송금할 수 있다.
온라인에서 즉시 결제할 수 있다.
그러나 편리함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라온다.
우리가 더 편리해지는 만큼 우리의 금융활동에 관한 데이터도 더욱 디지털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회는 무조건적인 찬성이나 반대보다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야 한다.
개인의 금융정보는 어떻게 보호되는가?
거래 데이터에 대한 접근 권한은 누구에게 있는가?
시스템 장애나 사이버 공격이 발생하면 어떻게 되는가?
경제적으로 취약한 사람들은 배제되지 않는가?
현금을 포함한 다양한 결제수단을 선택할 자유는 어떻게 보장되는가?
이러한 질문은 CBDC를 반대하기 위한 질문이 아니다.
오히려 더 안전하고 자유로운 디지털 금융사회를 만들기 위한 질문이다.
성경은 약자를 외면하지 않는다
경제 문제에서 교회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성경은 약자를 반복해서 보호하라고 명령한다.
가난한 사람, 과부, 고아, 나그네, 사회적으로 보호받기 어려운 사람들을 외면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따라서 새로운 금융 시스템을 논할 때도 기술적 효율성만 볼 것이 아니다.
가장 약한 사람이 그 시스템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디지털 기술에 익숙하지 않은 노인들은 어떠한가?
장애인과 금융 취약계층은 어떠한가?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을 자유롭게 이용하기 어려운 사람들은 어떠한가?
교회는 언제나 가장 작은 자를 바라보아야 한다.
하나님보다 돈을 더 의지하지 말라
예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 6:24)
이 말씀은 오늘날 더욱 중요하다.
돈이 현금이든, 은행 잔액이든, 카드이든, 디지털화폐이든, 그것이 우리의 하나님이 될 수는 없다.
성도의 안전은 통장 잔액에 있지 않다.
성도의 미래는 화폐 시스템에 있지 않다.
성도의 궁극적인 소망은 하나님께 있다.
CBDC 시대, 교회가 가르쳐야 할 것
앞으로 교회는 성도들에게 단순히 "CBDC를 찬성하라" 또는 "반대하라"고 가르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더 근본적인 교육이 필요하다.
첫째, 성경적 경제관을 가르쳐야 한다.
돈은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기신 도구다.
둘째, 금융 문해력을 높여야 한다.
성도들이 디지털 금융의 구조와 위험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셋째, 개인정보와 자유의 가치를 가르쳐야 한다.
디지털 시대의 시민으로서 자신의 권리를 알고 지킬 수 있어야 한다.
넷째,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
새로운 금융 시스템에서 소외되는 사람이 없도록 교회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
다섯째, 무엇보다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금융 시스템이 아무리 발전해도 그것이 하나님을 대신할 수는 없다.
교회가 경제를 외면해서는 안 되는 이유
일부 사람들은 경제 문제는 정치나 세상의 문제이고 교회는 복음만 전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복음은 인간의 삶 전체를 다룬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영혼만 구원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삶 전체의 주인이시다.
돈을 어떻게 벌고, 어떻게 사용하고, 어떤 가치관으로 경제생활을 하는가 역시 신앙의 영역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경제를 세속적인 영역으로만 치부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성경의 빛으로 경제를 해석하고 성도들에게 올바른 기준을 가르쳐야 한다.
# 화폐가 바뀌어도 청지기의 사명은 변하지 않는다
금화가 지배하던 시대에도 하나님은 주인이셨다.
지폐 시대에도 하나님은 주인이셨다.
전자금융 시대에도 하나님은 주인이시다.
그리고 디지털화폐 시대가 온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여전히 역사의 주권자이시다.
화폐는 변할 수 있다.
금융 시스템도 변할 수 있다.
경제 질서도 변할 수 있다.
그러나 성경의 원리는 변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주인이시며 인간은 청지기라는 사실이다.
이것이 CBDC 시대를 바라보는 교회의 첫 번째 기준이 되어야 한다.
맺는말 — 돈의 시대가 아니라 하나님의 시대를 살라
우리는 앞으로 더욱 디지털화된 세상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 변화 자체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변화가 가져오는 편리함만 바라보아서도 안 된다.
교회는 질문해야 한다.
이 시스템은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가?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가?
약자를 보호하는가?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하는가?
그리고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은 더 근본적인 질문을 해야 한다.
"나는 무엇을 의지하고 있는가?"
돈인가?
국가의 시스템인가?
기술인가?
아니면 하나님인가?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한 답을 준다.
돈은 우리의 주인이 될 수 없다.
우리의 주인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디지털화폐 시대를 살아가는 교회가 가장 먼저 회복해야 할 것은 새로운 금융기술에 대한 지식만이 아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인정하는 청지기 정신이다.
화폐의 형태가 아무리 달라져도 이 원칙만큼은 변하지 않아야 한다.
돈은 바뀌어도 말씀은 바뀌지 않는다.
금융은 변해도 하나님의 주권은 변하지 않는다.
시대는 달라져도 교회의 사명은 변하지 않는다.
### 코리아인사이트 특별기획
다음 제4부 — 「자유민주주의와 종교의 자유, 그리고 디지털 시대의 교회」 시대를 읽고, 말씀으로 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