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知泉 박 대산(朴大山) 목사의 생명샘- 메시아의 사역과, 가난한 자가 받는 축복

박대산목사 · 김영애 · 입력

메시아의 사역과, 가난한 자가 받는 축복

  

 "1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2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3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이사야 61:1~3)"(이사야 61:1~3)

 

 

                                          朴大山 목사

 

 오늘의 본문 말씀에는 메시아의 '은혜의 해'와, '신원(伸怨)의 날'에 대한 예언이 선포되었고, 아울러 메시아의 복음을 통하여 구원 받은 성도들에게 나타날 기쁨과 영광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지면상 간략하게 설명해보고자 합니다.

 

첫째. 메시아(그리스도)의 3대 직분

 1) 예수 그리스도는 세 가지 직분을 가지고 이 땅에 오신 구세주이십니다. 요컨대 자기 백성을 다스리는 왕이기도 하시고(이사야 9:6/마태복음 21:5/스가랴 9:9/계시록 15:3 등), 동시에 복된 구원의 소식을 선포하는 선지자이기도 하시며(사도행전 3:22,23),또한 슬픔과 고통 속에 있는 심령을 치유하는 제사장(이사야 54:4/히브리서 2:17,18/베드로전서 2:24)의 기능을 한 몸에 수행하고 기름부음을 받으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 사도행전 10장 38절에 보면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라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받으심으로 메시아로서의 권위를 갖게 되셨고, 구원 사역을 능히 감당하게 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까지도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자신의 사역을 수행하셨다고 하면, 우리는 더 더욱 성령님의 능력과 기름 부음을 받아야 마땅합니다.

 

 유명한 청교도 목사인 존 오웬(John Owen)은 “사람에게 어떤 면이든지 권위가 있는 것은 그 사람의 직분(position) 

때문이 아니라,그에게 성령의 기름 부으심(unction)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갈파하였습니다.

 

2) 그럼 오늘 본문은 메시아(그리스도)의 아름다운 소식(복음)이 누구에게 전파된다고 하였습니까?

 본문은 아름다운 소식을 듣는 자의 대상을 이스라엘 포로로 국한시키지 않고, 죄에서 해방된 모든 자들로 확장시킵니다. 즉 아름다운 소식을 받는 자들을 가난한 자, 마음이 상한 자, 포로된 자, 갇힌 자로 부르고 있습니다. 

이들은 1차적으로 예루살렘 성(城)의 멸망을 보고 슬퍼하며 회개하는 경건한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키지만, 나아가서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음을 깨닫고 하나님이 보내실 메시아를 고대하며 사는 가난한 모든 심령을 의미합니다(참고, 마태복음 5:3).

  

① '가난한 자'란 누구일까요? 

본문 1절 중반부에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이처럼 먼저 가난한 자에게 전파되었습니다 여기서 가난한 자는 물질적으로만 가난한 자가 아니라, 심령이 가난한 자, 마음이 상한 자, 자신의 죄로 인하여 슬퍼하는 자,자신의 허물로 인하여 근심하는 자를 다 포함하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열정과 사모하는 영혼으로 날마다 가난한 상태로 있는가! 아니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 만족하며, 하나님을 향해서는 갈망할 것이 없는 사람은 아닌지 스스로 한번 자신을 성찰해볼 일입니다.

  

② '포로된 자'와 '갇힌 자'는 누구일까요?

 

 • 본문 1절 후반부에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준다는 것은, 영적으로는 죄의 사슬에 얽매인 자가 그 사슬을 끊고 영적 해방을 맞게 된다는 뜻입니다(로마서 8:21/갈라디아서 5:1).

그리고 '갇힌 자에게 놓임을' 준다는 것은, 불의의 병기였던 인간의 육체를 의(義)의 병기로 회복시켜주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실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영육(靈肉)간의 자유를 주셨는데, 이를테면 사탄과 죄와(로마서 3:23,24) 사망(디모데후서 1:10)에서 우리의 영혼을 자유하게 하셨으며, 또한 주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의 육체를 죽음에서까지 해방시켜 주신 것입니다(참고. 계시록 2:11/20:4~6).

 

 • 그런데 20세기 한국 땅에는 해방신학(Theology of Liberation),혹은 민중신학이라는 잘못된 신학이 들어왔습니다. 

해방신학의 기조는 만인 구원설로, 하나님은 사랑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명은 온 세상 사람을 다 천국으로 인도하고 구원하는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따라서 사람의 영혼구원은 하나님께서 다 알아서 하실 일이니, 교회는 영혼 구원을 위해 애쓸 필요가 없고 교회가 할 일은 정치적으로 압박받고 경제적으로 약한 프롤레타리아(proletariat.자본주의 사회에서,생산 수단을 가지지 않고 자신의 노동력을 자본가에 팔아 생활하는 노동자 하층민 곧 부르주아) 계급을 해방시켜주는 것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 하지만 이것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었고,성경의 구원관을 왜곡한 이단 사상이었습니다. 이러한 사상을 가진 해방신학이 남미에서 시작되었는데,우리나라에 들어와서는 개정되어 민중신학이 되었습니다. 이 사상은 하나님이 민중과 함께,고난 받는 하나님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이 들어가는 곳에는, 언제나 좌파사상이 득세합니다. 결국 민중신학, 해방신학은 마르크스주의(marxism)가, 기독교와 결합된 잘못된 사상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해방신학의 근거로 삼았던 구절이 바로,이사야 61장 1절~3절 말씀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라는 말씀을, 정치적인 포로, 사회적인 억압으로만 해석했던 것입니다.

 

 • 그러나 예수님은 정치적인 억압이나 사회적인 억압보다도 더 무서운 것이 있음을 가르치셨는데, 그것은 곧 영적인 억압, 마귀의 억압, 죄의 억압이었습니다.

 요한복음 8장 32절로 34절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이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케 되리라 하느냐”라고 반문하였습니다.

실지 이스라엘은 그 당시에도 로마의 속국이었기 때문에, 남의 나라 종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종이면서도 아닌 것처럼 부인하려 했고, 더우기 마귀의 종이면서도 마귀의 종인 줄을 몰랐던 것입니다.

 

둘째,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신원(伸怨)의 날'에 대하여

 본문 2절에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라고 하였습니다.

 

1) '은혜의 해'란, 어느 때인가?

 •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고,그를 의지하는 자마다 구원을 얻을 수 있는 때인 신약시대를 말합니다. 

바울 사도는 이 '은혜의 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증거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린도후서 6:1,2)라고 하였습니다.

 

 • 이러한 구원의 날에 시온(교회)에서, 슬퍼하는 자가 받을 위로는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 2절 후반부터 3절 마지막까지 말씀같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성도들은 머리에 슬픔의 재를 뿌리는 대신 면류관을 쓰고,기쁨의 기름을 바르며 근심 대신 구원의 찬송을 부르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의의 나무’라는 칭호를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의의 나무’는 많은 열매를 맺음으로,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게 해야 합니다(요한복음 15:8).

  

2) 그러면 '신원(伸怨)의 날'이란 어느 때인가?

 • 종말론적으로는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마귀(사탄)을 결박하여 다시는 마귀로부터 피해나 미혹을 받지 않도록 해주시는 날을 가리킵니다. 이 날은 이사야 63장 3절과 4절 말씀같이,주님께서 자기를 앙망하는 자들을 위하여 생각 밖에 두려운 일을 행하여 원수를 갚아주는 날입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 심판 날에(요한복음 12:48) 하나님께서 대적자들을 멸하시는 보응은,곧 우리 성도들이 영광을 얻게 되는 날입니다.

 

 • 그리하여 천년왕국에 들어간 성도들은 '새 하늘 새 땅'에서(이사야 65:17~25) '그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며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는'(이사야 35:10) 복락을 누리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서도 '하나님께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가고 영원토록 기쁨만 누리는 천국 생활만 있을 뿐입니다(계시록 21:1~4).

 

▣ 결론

 우리는 그리스도의 은혜의 복음시대에 거저 주시는 많은 은혜를 받고,또한 영(靈)으로 인격적으로 주님을 만나 생(生)이 뒤바뀌는 역사도 체험하였습니다. 그러나 '은혜의 해'는, 때가 되면 문을 닫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신원의 날'은 의인 성도에겐 보상과 보응의 날이지만, 악인에겐 심판의 날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참 그리스도인이 되어 장차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그 분 앞에 부끄럽지 않은 빛된 삶을 살며(참고,요한1서2:28), 열심히 '영원한 복음'(계시록 14:6)을 증거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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