知泉 박 대산(朴大山) 목사의 생명샘- 베드로의 사명과 요한의 사명
박대산목사 · 김영애 · 입력
“18. 내가 진실로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19.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20. 베드로가
돌이켜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따르는 것을 보니 그는 만찬석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주님 주님을 파는 자가
누구오니이까 묻던 자더라 21. 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사옵나이까
2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요한복음 21장 18절~22절)
구약 시대에는 모세가 있고, 여호수아가 있습니다. 모세는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다가 죽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초림사역의, 특징을 담고 있습니다. 그 다음 여호수아가 뒤를 이어,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했습니다. 그는 죽지 않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갔습니다. 이것은 재림사역의, 특징을 담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베드로와 요한 사도는 각각, 초림과 재림 사역의 독특한 특징을 담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베드로는 중요하지 않고, 요한은 중요하다는 식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각각 초림과 재림의 특징을,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모두 복음인데, 율법과 복음과 예언으로 되어 있습니다. 율법은 구약적 특징이고, 복음은 신약적 특징입니다. 그리고 예언의 계시록 말씀은, 주(主)의 재림과 종말의 특징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이 시대는 은혜, 사랑 등 초림적인 복음만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종말 재림의 복음은 열지 못하고 있으니 교회가 방향을 잃어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은 주님의 대표적 두 사도를 통해서, 감춰진 복음의 비밀을 알아보고자 합니다.
첫째, 베드로의 소명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저희는 어부라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마태복음 4:18,19)
여기서 베드로가 그물을 멀리 던지다가 부름을 받은 것은, 초림 사역의 특징입니다. 그물을 처음 던질 때는 멸치, 꽁치, 고등어 등 잡동사니 물고기들이 다 들어옵니다. 여기서 영적으로 그물은, 교회를 상징합니다. 그리고 고기는, 성도를 상징합니다. 따라서 베드로의 사역은 전 세계에 교회가 확산되어 그물 같은 교회가 세워질 것을 의미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초림 사역을 통하여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될 먼 미래의 일을, 처음부터 그의 사명 속에 감추어 놓으셨던 것입니다.
초대교회 때 물고기 그림은, 성도를 상징했습니다. 카타콤에 들어가 보면 사도들은 큰 물고기로, 일반 성도들은 작은 물고기로 그렸던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를 보면 악인도, 깡패도 어느 죄인을 막론하고 모두 들어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 사역의 특징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둘째, 요한의 사명
"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이 그 부친 세베대와 한 가지로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저희가 곧 배와 부친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마태복음 4:21,22)
사도 요한의 아버지 '세베대'는 '여호와의 주심'이란 뜻으로서, 인간적인 면에서 예수님의 이모인 살로메의 남편입니다. 그는 삯꾼을 부릴 정도로 집안이 부유했고, 자기 가옥을 가지고 있을 만큼 예루살렘에서 상당히 유력한 가문의 사람이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의 아들 요한은 배의 그물을 깁고 있을 때에, 예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요한의 모습은, 재림신앙의 특징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물을 깁고 있다는 것은, 더 이상 물고기가 밖으로 즉 성도가 세상으로 빠져 나가지 못하게 한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세상 마지막 종말 때는 예수의 신부된 교회가, 철저히 준비되어야 할 때입니다. 더 이상 그리스도의 밖으로나, 세상으로 빠져나가면 안 되는 때입니다.
따라서 요한 속에 감추어진 재림 신앙은, 좋은 고기와 못된 고기 그리고 알곡과 쭉정이를 갈라내어, 마침내 흠과 티가 없는 어린 양의 신부를 만드는 마지막 종말론적 최종 신앙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47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48 그물에 가득하매 물 가로 끌어 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버리느니라 49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내어 50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리라(마태복음 13:47-50).
셋째, 이 시대를 이끌어가는 복음의 방향은 무엇이어야 할까요?
초림 당시 예수님은 계시 자체이셨고, 사도들은 주님으로부터 말씀을 직접 들었습니다. A.D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 때는 기독론이었으며, 종교 개혁시대는 말틴 루터, 칼빈을 통해 구원론, 교회론을 중심으로 인도하였고, 중세교회가 타락하자 웨슬레이를 통하여 성화론으로 시대를 일깨웠습니다.
그 후 미국의 대 각성 운동 회개와 성령 운동의 불길은, 거듭 영적 암흑기의 죽음의 시대를 살려내기도 했습니다(18세기의 요나단 에드워드.19세기의 찰스 피니와 무디 목사 등).
그렇다면 오늘날 이 시대는 어떠한 복음을 가지고, 시대를 일깨워야 하겠습니까? 천국과 지옥을 선포하고, 다시 오실 주님을 전파하는 재림 신앙이 아니고서는, 무디어져가는 시대의 감각을 일깨울 수 없을 것입니다.
역사적 재림의 사건을 믿지 않기 때문에, 세계교회가 기복주의, 신비주의, 자유주의 사상으로 빠져드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러한 분수령 같은 시대에 베드로 신앙이 중요한가? 요한의 신앙이 중요한가? 하며 바보 같은 논쟁을 해서는 안 됩니다. 둘 다 위대하고, 중요합니다. 다만 베드로적인 파종의 신앙만 알고 초림적인 계시에 머물러(참고, 히브리서 5장 12절~6장 3절), 요한의 재림 신앙의 추수의 복음을 모르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 교회마다 요한 계시록을 덮어 버리고, 그런 행위를 오히려 잘하는 것처럼 자랑으로 여기는 시대 상황 속에서, 요한의 재림 신앙을 외친다는 것이 얼마나 외롭고 힘든 일이겠습니까? 라오디게아교회(계시록 3:14~20) 시대가 끝나면, 대 환난이 닥쳐오고(참고, 다니엘 9:27), 급기야 주님이 오시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 때의 교회는, 요한의 그물 깁는 맥이 되어야 합니다. 성도들이 세상으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교회마다 그물을 깁는 재림 신앙으로 무장시켜야 합니다. 베드로의 사역은 심는 의미가 있고, 요한의 사역은 거두는 추수의 의미가 있습니다.
베드로가 제사장적 사명이라면, 요한은 선지자적 사명입니다. 똑 같은 주님의 제자요 사도이지만, 사역적면에서는 갈라졌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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