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길교회 이기용 목사의 미스바회개성령대성회 설교- 기도면 충분합니다(막9:29)
이기용목사 · 곽영민 · 입력
※ 본 설교문은 지난 8월24일 새벽 5시에 서울시청앞 광장에서한국교회총연합회와 CBS는 공동으로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는 주제로, “1907년 평양에서 2024 서울까지!” [CBS 70주년기념 회개성령대성회]에서 설교한 내용이다.
“기도면 충분합니다”
막9:29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임 기도회 가운데 함께하시고 기뻐하시는 줄 믿습니다.
오늘 이 시간 함께 나눌 말씀은요. 마가복음 9:29절입니다. 오늘 우리가 본 말씀에는 귀신 들린 한 아이가 통제되지 않는 아이의 아버지의 이름은 언급이 돼 있지 않아요. 그 아버지의 아들이 통제되지 않고 무덤 사이에서 자기 몸을 해하고 또 소리를 지르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또 두려움과 공포를 주는 그런 아이가 있었습니다. 근데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그 아이를 부모가 데려왔지만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 아이를 고치지 못했어요. 근데 예수님께서 그 아이를 보자마자 그 아이를 붙들고 있는 말 못하고 듣지 못하게 하는 그 어둠의 영을 물리치고 그 아이를 자유케 하고 깨끗하게 고쳐주셧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의아해 했어요. 자기들은 숫자가 많았고 그 아이를 고쳐보려고 노력을 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고칠 수 없었는데 어떻게 예수님은 저 아이를 고치게 되었습니까? 그때, 우리 예수님은 단 한마디의 이 말씀으로 그 비밀을, 그 해답을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오늘 우리가 목에찬 빨간 띠를 보면, '기도가 해답'이라고 새겨져 있는데요. 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가지 못한다.
그 아이를 붙들고 괴롭히는 그 존재가 그 어둠의 영적 존재이고, 자기들 앞에 놓여 있는, 자기들이 고쳐야 될 그 아이의 문제가 영적인 문제고, 영적인 싸움의 문제라는 것을 예수님의 제자들은 알지를 못했고, 그 아이 속에서 역사하는 그 어둠의 영을 물리치지 못했죠.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단번에 알았습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말 못하고 듣지 못하게 하는 악한 영에 딱 붙들려 있는 그 아이를 괴롭히고, 그 아이로 인해서 부모와 주위의 사람들에게 공포와 두려움과 불안을 가져다주는 그 원인이, 궁극적이고 본질적인 원인이 영적인 데 있다는 거죠.
우리가 과학만능주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계몽주의 교육의 영향을 받아서 우리는 초자연적인 역사와 또 영적 싸움의 역사를 간구하는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목회자인데요. 새벽에 3시가 넘어서 갑자기 전화가 왔어요. 목회자는 자다가도 전화가 오면 무슨 급한 일인가 보다 하고, 교인들 가운데 급한 문제가 있나 보다 하고, 습관적으로 전화를 받게 됩니다. 전화를 받았더니 제가 목회하는 교인 중에 전임 목회지에 있는 교인 중에 한 분의 자녀가 어둠의 영의 귀신에 붙들려 있다는 거예요. 목사님 빨리 와서 좀 쫓아달라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참 피곤했지만 우리 부교육자님과 함께 대동해서 갔어요. 기도하는 마음으로 갔습니다. 어둠의 영이 붙들려 있다고 하는데 제가 아파트 문을 열었을 때 문을 여는 순간 칼을 들고 저를 공격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저도 약간 두려움도 있었지만 우리 부교역자님과 함께 기도하자, 기도합시다! 이렇게 하고 아파트 초인종을 누르니 문을 열어주셔서 들어가보니 아무 일도 없어요. 그래서 그 집사님한테 집사님 아들이 어디 있냐고 물었더니 저 방에 있다는 거예요. 저기 방에 있다고 그러니까 더 좀 부담이 되잖아요. 어둠에 붙들려 있기에 방문을 여는 순간 칼을 들고 공격할 수도 있는 거고해서 우리 부교역자님하고 기도하며 방문을 딱 열었어요. 열었더니 아무 일도 없어요. 아이가 그 새벽 4시가 다 되도록 컴퓨터 앞에 앉아서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게임을 하고 있었는데, 근데 가만히 보니까 애가 눈이 이상해요. 그냥 단순히 게임하고 새벽까지 자기가 좋아하는 놀이하고 있는게 아니라 깊이 들어가 보니까 어둠에 붙들려 있는 거예요.
여러분 이 땅에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에 왜 이 아이의 아버지 이름이 누군지 언급이 되어 있지 않고, 이 아이의 이름이 언급돼 있지 않을까? 시대마다 수많은 아이들이 수많은 가정에 이런 고통이 있는 거예요. 그 고통의 요인이 표피적인 데 상황적인 데 있지 않다는 겁니다. 깊이 들어가 보면 영적 싸움이라는 거예요. 근데 오늘날 왜 이 영적 싸움에서 교회가 지고 있을까? 저는 교회가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믿습니다.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이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예수님의 제자를 통해서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왜 오늘날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요. 어둠의 권세들을 깨뜨리고 제압하고 정복해야 하는데, 오늘날 이 세상이 정신없는 무질서 속에 창조 질서가 뒤집어지는 이런 모습을 보면서도 왜 교회를 통해서 이것을 바로잡는 어둠의 권세를 제압한 일들이 더 많이 일어나지 않을까? 왜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예수님께서 답을 보여주시는 겁니다. 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가지 못한다. 교회는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는 거예요.
제가 2년 전에 교회가 배려를 해주셔서 한 5주간 유럽을 돌아볼 기회가 있었어요. 물론 우리가 유럽에 대해서 소문을 많이 들었습니다. 유럽은 기독교 국가고 국민들의 약 90%가 영국을 중심으로 예수님을 믿는 나라들이 이루어진 대륙이죠.
근데 오늘날 유럽에 있는 교회들이 텅텅 비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걸 저는 현장을 확인해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2천년 동안 부흥이 일어났던 부흥이 일어나서 선교사를 바울과 바나바를 최초로 세계 선교사로 파송했던 안디옥 교회부터 영국 존 낙스가 목회했던 장로교의 부흥이 일어났던 에딘버러와 또 지금으로부터 약 120년 전에 웨일즈의 부흥이 일어났던 그곳까지 다 찾아가 봤어요. 10만 명을 전도했던 교회가 있었어요. 거기를 가보고 싶었습니다. 어마어마한 숫자가 주님 앞에 돌아왔던 교회죠. 에반 로버츠라는 목사님의 회개를 통해 그에게 성령의 불이, 한 사람의 회개 위에, 아까 김운성 목사님을 통해 우리의 가슴을 치는 그런 회개의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한 사람의 회개를 통해서 하나님이 불이 임했던 거죠. 그게 공식입니다.
사도행전 2장 38절에도 베드로를 통해서 "너희가 회개하고 각자 돌이켜 죄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줄 것이라"고 했죠. 한 사람의 깊은 회개를 통해서 그 한 사람에게 성령의 불이 임했던 겁니다. 그가 있는 곳에 수많은 영혼들이 주 앞에 돌아오는 기도의 운동, 회개의 운동, 회심의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이킹들이 모였던 영국이라는 나라가 사람이 바뀌니까 제도도 바뀌고요. 법도 바뀌고, 거친 바다의 해적대들이 신사 숙녀가 되었잖아요.
국민의 약 90% 가까이 예수님을 믿고 인정하는 기독교 국가가 된 거예요. 저는 성령의 역사를 일으켰던 그곳을 가고 싶었어요. 그래서 우리 부부가 고생고생해서 갔더니 지금은 7명만 모여 있더라고요. 저희들을 가이드 해줬던 그 교회 가장 나이가 어린 여전도 회원의 70대 후반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우리가 기도를 했는데 답답하더라고요.
여러분, 기도하는 사람이 많이 모인 곳에는 기도의 역사가 있기 때문에 느낄 수가 있죠. 기도가 메마른 곳에는 이 답답함이 있어요. 그래서 제가 물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냐?고, 수많은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오고 그 영혼들을 소화할 수 없어서 줄을 서서 예배가 끝나도록 기다렸던 그 교회가 지금 이렇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부터 기도가 덜하여진 거예요.
저는 저를 포함해서 우리 한국교회의 문제는 기도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부모님 세대 때, 믿음의 선지 세대 때, 정말 교회마다 기도회가 열렸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기도의 파수꾼, 기도의 복병들, 수많은 기도의 용사들이 밤을 새우고 새벽을 깨우며 기도했던 사람들.... 그래서 교회마다 부흥이 됐고, 너나 할 것 없이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났습니다.
여러분, 기도 외에는 이 영적 싸움, 이런 어둠의 영들, 이런 세력들이 나아갈 수 없어요. 근데 바꿔 말하면 뭡니까? 기도하면 우리가 아무리 부족해도 하나님이 기도하는 그 개인 가정, 교회, 공동체, 나라 민족 위에 영권을 주십니다.
복음의 권능이 나타나고요.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다스리는 리더십이 주어지게 됩니다.
창세기 1장 28절에 보면 땅을 다스리고 정복하고 땅 위에 번성하는 이런 역사가 일어나는 거죠.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신앙생활을 했던 한국교회 초창기는 믿는 사람들의 숫자가 적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리드했고요. 교회를 깐보지 못했습니다. 어느 위대한 한국 사회 지도자는 경찰서 10개가 마을에 있는 것보다 교회 하나 있는 게 훨씬 낫다고 그랬어요. 오늘날 이 땅에 교회가 많고요. 믿는 사람이 많습니다. 우리가 숫자가 적어서 이 세상을 리더하지 못하고 세상을 바른 길로 이끌지 못하는 게 아닙니다. 숫자는 많은데 기도의 용사들이 적은 거예요. 바꿔 말하면 뭐예요? 숫자가 작아도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 됩니다.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중학교 2학년 때 교회가 우리 마을에 없고 이웃 마을에 있어서 어린 마음에 언덕에서 하수구가 흘러가는 그곳에서 제가 기도했던 적이 있었어요. 초등학교 5학년 때 중학교 2학년 때 무슨 믿음이 깊었겠습니까?
제 인생이 힘들고 인생의 무게가 힘들어서 하나님 앞에 손을 들고 하나님께 기도했던 때가 있었어요. 근데 다 잊어버렸습니다. 그 시간을 다 잊어버렸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40년 50년이 가까운 이때 그 장면을 보여 떠올려주시더라고요. '기용아! 내가 니가 하수구 안에 들어가서 너 혼자 울면서 기도하는 그것을 보았다'라고 하시는 거예요.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향해 가는 예수님을 향해 따르던 수많은 여인들이 울며 따라오는 그 여인을 향해서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와 내 자녀들을 위해 울어라." 너와 네 자녀를 위해 울어라. 한국교회의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우리 자신 오늘 주신 말씀처럼 우리 자신의 죄와 허물을 위해서 우는 눈물, 자녀들을 위해 흘리는 부모에 눈물이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겁니다. 우리 예수님이 답을 보여주잖아요. 너를 위해 울고, 내 자녀를 위해 울어보라는 겁니다.
예수님은 참 제자들을 정죄하지 않고 다 품었지만 딱 하나는 양보하질 않으셨어요. 그것은 기도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루 종일 예수님을 따라 전도하던 그 제자, 그가 지쳐 있던 그들이 그들에게 꾸벅꾸벅 졸고 있는 그들에게 예수님은 깨우셨어요.
왜, 한시 동안도 기도하지 못하느냐!
왜, 새벽을 깨우지 못하느냐!
왜, 특별히 새벽에 기도해야 되느냐!
왜, 일상을 새벽을 깨우지 못하느냐!
내가 새벽에 내가 너희를 도와준다고 했지 않냐?
우리가 다시 기도하면, 세상을 리드하고, 세상을 장악하고,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우리 한국교회가 될 줄 믿습니다. 다시금 저절로 영적 가슴과 회개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이 우리에게 임하여서 놀라운 선교 부흥의 역사가, 수많은 우리 다음 세대가, 하나님 앞에 헌신자로 일어나게 될 줄을 믿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부족한 저희들, 사무엘 선지자처럼 무엇보다도 우리의 죄를 회개하되 기도를 신은 죄를 범했음을 회개합니다.
다시금 기도하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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