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는 주는 것이다"…일본 복음화를 향한 한 여성 선교사의 눈물과 헌신
미션 · 곽영민 · 입력
"141년 전 아펜젤러와 언더우드 선교사가 조선을 향해 첫발을 내디딜 때, 원래 목적지는 인도와 일본이었다"
【코리아인사이트】 일본 규슈에서 사역하고 있는 박경숙 선교사가 자신의 극적인 신앙 간증과 함께 일본 선교의 현실을 소개하며 참석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했다. 그는 "나는 일본에 선교하러 간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다시 보내신 고향으로 전도하러 간 사람"이라며 "선교는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며, 끝까지 순종하는 삶"이라고 고백했다.
"1549년에 복음이 들어갔지만 아직도 우상의 나라"
박 선교사는 유쾌한 인사로 분위기를 풀어갔지만, 곧 일본 복음화의 현실을 이야기하며 무거운 주제를 꺼냈다.
그는 "1549년 프란치스코 자비에르를 통해 일본에 복음이 전해졌지만, 지금도 일본에는 수많은 우상문화가 자리 잡고 있고 복음화율은 매우 낮다"고 안타까움을 전했다.
특히 일본 사회는 오랜 종교문화와 세속주의가 결합돼 복음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환경이라며, 선교사가 감당해야 할 영적 부담이 매우 크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일본 선교사"라는 표현보다 "일본 전도자"라고 소개했다.
"저는 일본에서 학교를 다녔고 수십 년을 일본에서 살았습니다. 1999년 한국으로 영주 귀국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다시 저를 일본으로 보내셨습니다. 저는 낯선 나라에 간 것이 아니라, 원래 살던 곳으로 복음을 전하러 돌아간 것입니다."
그의 이 한마디는 참석자들에게 선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중이 되려던 사람이 예수님의 사람이 되다"
이어 그는 자신의 극적인 회심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젊은 시절 그는 불교에 깊이 심취해 승려가 되는 것까지 생각했던 사람이었다. 사업도 크게 성공해 30대에 벤츠를 타고 다니며 세상적으로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았다.
"예수가 어디 있느냐"고 외치며 살아가던 그에게 하나님은 예기치 않은 방법으로 찾아오셨다.
36세 무렵 갑작스러운 중증 질환이 찾아왔다. 얼굴 한쪽이 마비되고 치매 증상까지 나타날 정도로 건강이 악화되면서 그는 인생의 밑바닥을 경험했다.
그는 "그때 비로소 예수님만이 생명의 주인이심을 깨달았다"며 "지금은 오직 예수밖에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노숙자와 재소자를 섬기다"
회심 이후 그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1997년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서울역 노숙자들과 알코올 중독자, 그리고 청송교도소 수감자들을 찾아다니며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사업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던 과거의 삶도 모두 내려놓았다.
그는 여성 경제인으로 인정받으며 상당한 재산을 소유했던 시절을 회상하면서도 "아파트 여러 채와 많은 재산이 있었지만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되물었다.
이어 "돈도, 권세도, 명예도 인생의 주인이 될 수 없다. 우리의 주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고 고백했다.
그는 골로새서 말씀을 인용하며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가 영광의 소망이기에, 하나님이 가라 하시면 가고 전하라 하시면 전하는 삶이 선교"라고 강조했다.
암 선고가 오히려 선교의 전환점
그는 다시 한번 큰 시련을 만났다.
암 진단을 받고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병보다 하나님의 부르심이 더 컸다고 회상했다.
수술은 받았지만 항암치료는 한 차례만 받은 뒤 다시 선교지로 돌아갔다.
그는 "병원에서는 계속 치료를 권했지만 하나님께서 살려 주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일본으로 돌아갔다"고 말했다.
이후 병원 검진에서는 "20대와 같은 혈관과 혈액 상태"라는 진단을 받았다고 간증하며,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했다.
일본 은혜교회…123개국 유학생들의 선교 허브
현재 그는 일본 규슈 최남단에 위치한 일본 은혜교회를 중심으로 사역하고 있다.
이 지역에는 세계 123개국에서 온 유학생들이 모여 있다.
그는 "하나님께서는 일본만이 아니라 세계 열방을 일본으로 보내고 계신다"며, 유학생들을 복음으로 양육해 다시 각 나라로 파송하는 것이 자신의 중요한 사역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한국의 정치인과 교육자들의 자녀 가운데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던 청년들이 일본 은혜교회에서 변화되는 모습을 보며, 부모들까지 예수를 믿게 되는 놀라운 역사가 이어지고 있다고 간증했다.
"받는 선교사가 아니라 주는 선교사가 되겠습니다"
이번 선교대회에서 가장 큰 감동을 준 대목은 선교사의 '주는 선교'에 대한 고백이었다.
그는 양치호 목사님이 "매월 1천만 원의 선교헌금을 드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큰 도전을 받았다고 밝혔다.
"하나님, 저도 받는 선교사가 아니라 주는 선교사가 되게 하옵소서."
그는 즉석에서 "매월 3천만 원을 선교에 드릴 수 있는 선교사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기 시작했다고 고백했다.
과거에도 코로나 이전까지 매월 300만 원씩 선교헌금을 드려왔지만, 이제는 더 큰 나눔을 꿈꾸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네비우스 선교정신도 결국 자립과 헌신"이라며 "선교사는 도움만 받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돕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밥으로 시작된 일본 복음화
그의 사역 가운데 가장 독특한 것은 '김밥 선교'였다.
13년 전 일본으로 다시 돌아간 그는 지역 대학들과 협약을 맺고 학생들에게 김밥과 한국 음식을 나누기 시작했다.
코로나19로 학생들이 외출조차 하지 못하던 시기에는 무료로 김밥과 양념치킨을 제공하며 복음을 전했다.
이러한 섬김은 일본 사회에서도 큰 화제가 되었고, NHK 방송에도 소개될 만큼 지역사회의 관심을 받았다.
그는 "처음에는 김밥을 만들 줄도 몰랐다"며 웃음을지었지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다"고 말했다.
"5층 선교센터를 세워 열방을 품겠다"
선교사는 앞으로의 비전도 소개했다.
내년에는 5층 규모의 건물을 마련해 1~3층은 다국어 카페와 문화공간으로 운영하고, 예배와 교제를 통해 자연스럽게 복음을 전하는 선교센터를 세울 계획이다.
이 공간에서는 일본어뿐 아니라 여러 나라의 언어가 사용되는 국제적인 만남의 장소를 만들어, 유학생과 지역 주민 모두에게 열린 선교의 장을 제공하겠다는 비전을 밝혔다.
또한 현재는 딸과 사위도 모든 사업을 정리하고 선교에 동참하고 있으며, 가족 전체가 일본 복음화를 위해 헌신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눈이 감기기 전까지 복음을 전하겠습니다"
발표를 마무리하며 그는 참석자들에게 마지막 당부를 전했다.
"선교는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하십니다. 우리는 순종하면 됩니다."
이어 "이제 나이도 70세가 넘었지만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그날까지, 눈이 감기기 전까지 복음을 전하다가 주님 앞에 서기를 원합니다"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강단을 내려오는 그의 모습은 화려한 선교 성과보다 철저한 순종과 헌신이야말로 선교의 본질임을 다시 한번 일깨워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