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인천 종교계 시찰- 한국 기독교 복음의 출발지 내리교회서 환담회 가져
곽영민 · 입력
인천 내리교회: 근대 문물과 개신교 역사의 ‘관문’ 역할 조명
하와이 이민 선발부터 백범 김구의 옥고까지... 한국 근현대사의 중심지
아펜젤러⋅언더우드역사기념관 건립위해 최대한 협조
[코리아인사이트 인천] 국회 문화체육 관광위원회 위원들은 오늘(2025년 10월 17일) 오전에 인천 강화도에서 불교 유명 사찰을 시찰하고 오후에 중구 우현로67번길 3-1에 위치한 내리교회를 방문, 한국 기독교 복음의 출발지인 인천에서 한국 교회의 뿌리를 되새기고, 선교 140주년을 기념하는 뜻깊은 자리가 마련됐다.
인천기독교총연합회(이하 인기총)와 아펜젤러⋅언더우드역사문화기념사업회는 내리감리교회에서 시찰및 환담회를 열고, 한국 기독교 선교의 역사와 인천의 영적·문화적 가치에 대해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눴다.
▲ 위원장 김교흥 국회의원과 담임 김흥규 목사
일행들을 반가이 맞아준 내리교회 담임 김흥규 목사는 인천은 1883년 개항 이후 서양의 문물(서양 문물)이 조선 팔도로 전파되는 관문 역할을 수행했으며, 개신교 선교사들이 가장 활발하게 활동했던 지역으로 기록되어 있다며, 특히 내리교회는 한국 개신교의 초기 역사와 하와이 이민, 독립운동가 백범 김구 선생의 역사적 배경이 깊이 얽혀 있는 현장으로 주목받고 있다고 했다.
김목사는 유서깊은 교회 담임답게 전문 가이드 못지않게 일행들을 제일먼저 교회 별관 2층에 복원된 [제물포 웨슬리 예배당]과 전시관으로 안내했으며, 해박한 지식으로 다음과 같이 한국 초기 기독교 역사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 내리교회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는 김흥규 목사
초기 개신교 선교의 시작과 교육 활동
한국 개신교 선교는 1885년 4월 5일 부활주일에 시작되었다. 감리교 대표로 아펜젤러 선교사 (27세) 부부와 장로교 대표로 호러스 언더우드 선교사(26세)가 배를 타고 조선에 도착했다. 당시 서울은 1884년 12월 갑신정변 이후 불완전한 상태였기 때문에(약 600명 정도 희생 기록 있음), 이들은 입경하지 못하고 다이부츠 호텔(대불 호텔)에서 일주일을 머물렀다. 이후 일본을 거쳐 6월 20일 다시 돌아와 내리교회 인근 초가집에서 39일 동안 머문 후에야 서울에 입경할 수 있었다.
고종 임금은 기독교 선교에 대해 교회를 짓는 것은 허용하지 않았으나, 학교와 병원을 세우는 것은 괜찮다는 칙령을 내렸다.
이에 따라, 아펜젤라 선교사는 남자 교육 선교사로서 배재학당을 설립했고, 메리 스트랜턴 선교사는 여자 교육 선교사로서 이화학당을 설립했다.
내리교회는 1892년에 영화 학당(영화 학교)을 세웠으며, 이는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초등학교 중 하나로 전해지고 있다.
▲ 복원된 제물포 웨슬리 예배당에서 한국 기독교 전래와 내리교회의 역사를 설명하는 김흥규 목사
하와이 이민의 거점 및 인천의 신뢰도
현재 앉아 있는 내리교회 건물은 인천 최초의 서울시 개신교회의 일터였으며,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의 중심지였다.
하와이 이민 (1903년): 1903년 1월,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할 노무자 102명이 최초로 하와이로 건너갔다. 중국인과 일본인 노동자들이 경제 사정 개선으로 철수하면서 한국 이민의 문이 열렸는데, 개실러라는 인물이 내리교회 앞에 동서개발 회사를 설립하여 노동자를 모집했습. 선교사들의 설득으로 122명이 선발되었으나 20명이 신체 검사에서 탈락했고, 최종 102명 중 50명이 내리교회 교인이었다. 이들은 나가사키에서 호놀룰루까지 10일 동안 배를 타고 가며 선상 예배를 드렸고, 도중에 8명이 추가로 개종하여 총 58명이 하와이에 도착했다. 인하대학교는 인천과 하와이를 합성한 이름으로, 양 지역의 특별한 유대 관계를 상징한다.
▲ 일행들을 편안하게 안내해준 내리교회 최영호 행정목사
교회 건축과 신뢰: 내리교회의 전신인 화이트 채플(White Chapel)은 1894년에서 1895년 청일전쟁 발발 시 인천 사람들이 피난을 가면서 귀중한 재산을 맡겼던 곳이다. 난리가 끝난 후 교회가 재산을 하나도 훼손된 것 없이 돌려주자, 난리통에도 믿을 만하다며 그때부터 교인들이 벌 떼같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기존 채플을 허물고 1900년 6월에 건축을 시작하여 1901년 성탄절에 입당한 현재의 십자가 양식의 건물(예배당을 공중에서 바라보면 십자가 모양이 보임)을 지었다.
▲ 환담회 모습(위원장 김교흥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백범 김구 선생의 옥살이와 아펜젤라의 희생
내리교회 바로 옆에 위치한 [인천 감리서](필자주: 현재는 이 터에 내리마루문화쉼터가 세워져있다.)에서는 백범 김구 선생이 두 번이나 옥살이를 했다.
1차 옥살이: 1895년 을미사변(명성황후 시해 사건)과 관련된 사건으로 투옥되었다.
강제 노역: 김구 선생은 한만 축조공사 강제 노역에 동원되었으며, 비계 타고 오르내릴 때마다 몇 번이나 떨어지고 싶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출옥 소식: 후에 그는 가석방되는 소식을 들었다. 출옥후 상해로 가서 독립운동을하다가 1945년 11월 고국으로 왔고, 1946년에는 김구 선생이 내리교회에 방문하여 강연한 기록 사진도 남아 있다.
한편, 아펜젤라 선교사는 17년간 사역 후 1902년 4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목포 성서 번역회에 참석하기 위해 배를 타고 가던 중 군산 앞바다 오청도 근처에서 일본 증기선과 충돌했다. 당시 키가 180cm이고 수영선수 출신이어서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었으나, 배재학당의 조사 조한교와 정신여학교 학생을 구하려다가 골든타임을 놓치고 익사했다. 그의 시신은 수습되지 못했으며, 양화진에 있는 묘는 가묘이다.
▲ 인기총 총회장 장일량 목사(우), 아언기념관사업회 회장 이종복 목사(좌), 인기총연합장로회 총회장 김상배 장로(중앙)
지역 선교와 초기 정착
인천은 감리교 지역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초기 선교사들은 선교지분할협정(교계예양) 원칙에 따라 교파 경계를 정했으며, 먼저 선점한 지역에는 다른 교단이 선교를 양보했다. 이로 인해 1945년까지 인천에는 감리교만 주를 이루었다 (인천시 장로교회는 1946년에 설립).
강화도 지역은 병인양요(1866년)와 신미양요(1871년) 이후 서양인 출입이 금지되었으나, 내리교회 교인이 된 강화 출신 이승환이 1893년에 보부상 복장(갓 쓰고)을 하고 강화도로 들어가 최초로 교산교회를 세우면서 개신교가 전파되었다.
▲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임원들
보존된 역사와 흥미로운 이야기
종(鐘): 많은 교회의 종이 강탈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내리교회의 종은 빼앗기지 않고 지금도 남아있다.
하와이 결혼: 하와이 이민 초기, 40~50대의 남성 이민자들이 결혼을 위해 한국에 10년~15년 전의 젊은 사진을 보내어 결혼을 약속했고, 하와이에 도착한 신부가 사진 속 남편이 아닌 시아버지 닮은 늙은 남성과 결혼하게 된 사례가 있었다.
복원예배당과 박물관 견학을 마친 후 가진 간담회 사회는 인기총 사무총장 김흥수 목사가 맡았으며, 참석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표하며 인천이 한국의 거대한 현대사가 시작된 곳이며, 우리가 발전할 수 있는 계기를 잡기 시작한 곳임을 강조하며 간담회를 시작했다.
▲ 환담회 순서자들( 김상배 장로, 김규열 목사, 신바울목사)
환담회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인기총 총회장 정일량 목사는 인사하기를, 문화체육 관광위원회 위원들의 방문에 감사하며, 십자가를 통한 헌신과 사랑, 그리고 민족이 새롭게 흥기하는 시간을 서로 알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신 것에 감사했다.
선교사들이 한국 역사에 미친 영향과 특히 인천 제물포에 와서 끼친 영향에 대한 기념관을 건립하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선교사들을 통한 하나님의 역사를 다시 한번 조명하는 계기가 되도록 많은 관심을 부탁했다.

▲ 인사하는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 김교흥 국회의원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 김교흥 국회의원은 인사하기를 내리 교회가 140년 된 교회라는 점을 언급하며, 아펜젤러와 언더우드 선교사님이 1885년도에 제물포항에 첫발을 디딘 후 140년이 흘렀다고 말하며, 문화체육 관광위원회 위원들이 내리 교회에 시찰로 오게 되었으며, 아펜젤러⋅언더우드역사기념관 건립을 위해 함께 해준 것에 감사를 표했다.
문화체육 관광위원회 위원들이 역사 기념관 건립의 예산 문제 때문에 너무 걱정하지 말라며, 이 사업은 내년도 이후에 벌어질 일이며 지금은 역사적으로 기념관이 필요하다는 뜻을 전하는 것임을 말했다.
▲ 간사 임오경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인천이 100년 이상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곳이며, 세계 문물이 인천을 통해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그 역사가 국민들에게 아직까지 가려져 있다고 지적했다. 대한민국의 역사를 토대로 대한민국의 비전을 제대로 가질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인사 말씀을 전했다.
이어서 인기총 공동 회장인 김규열 목사가 다음과 같이 기도를 했다. 대한민국이 치열하게 싸우고 있지만 복음으로 하나 되게 해 주시고 오직 복음으로 이 나라를 살리게 해달라고 간구했다. 또한 인천을 통해 대한민국을 세우고자 하는 리더십들에게 힘과 능력을 주셔서 복음으로 역사를 이끌어가도록 도우시고 역사해 달라고 기도했다.
사무총장 김흥수 목사는 인기총 역사를 보고하기를, 인기총은 1962년 3월 31일 율목감리교회에서 창립되었으며, 공식적으로는 64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아펜젤러와 언더우드 선교사님이 첫발을 디디면서부터 교회 역사가 시작되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140년의 역사라고 설명했다.
인기총의 창립 목적은 각 교회의 공통적인 선교 사업을 연합으로 추진하고, 교파의 친교와 사랑 및 협동 정신을 통해 인천 지역의 복음화와 성시화를 성취하는 것이었다.
주요 사업으로 가난한 자와 소외받은 자들과 함께하는 문화 사업을 진행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대목이라고 밝혔다.
▲ 간사 박정하 국회의원(국민의힘)
인천 기독교계의 꿈은 "인천은 한국 기독교의 성지다"라는 것이며, "인천의 꿈은 한국의 미래를 제시하고 있다"는 꿈을 가지고 기도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가장 중요한 사업은 아펜젤러 언더우드 선교 역사 기념관을 건립하는 것이며, 이는 나뉘드린 책자에도 표현되어 있는 사업이라고 소개했다.
이미 세워진 한국 기독교 백주년 기념탑에 대해 설명하며, 이 기념탑은 종 모양으로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되신 하나님께 기도하는 모습이며, 모든 성도들이 힘을 모아 "하나님 우리가 하나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라는 깊은 '하나됨'의 뜻이 담겨 있다고 밝혔다.
이 종소리가 사랑과 섬김, 봉사의 정신을 담아 전국과 전 세계로 퍼지기를 염원하며 세워졌으며, 1983년에 시작하여 1986년 3월 30일에 완료되어 인천 시청에 기증되었다고 했다.
기념관 건립은 아펜젤러⋅언더우드역사문화기념사업회 이사이신 이종복 감독께서 눈물과 기도로 준비해 온 사업으로, 800평의 부지에서 추진될 예정이며, 140년의 모든 역사 자료가 세 권의 책에 담겨 기록되었다고 설명했다.
이 기념관은 역사적, 문화적, 교육적, 관광적인 가치를 지니며,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복음을 전하고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 인사하는 인기총 총회장 정일량 목사
인기총 보고 후, 사회자는 아펜젤러 언더우드 기념관 관련 내용을 이끌어 온 이종복 감독을 소개했다.
이종복 감독은 자신이 존경하고 좋아하는 분께서 이런 자리를 마련해 준 것에 감사드리며, 자신이 하는 소원을 아주 밝히 알고 항상 와서 격려와 큰 힘을 주신 분이라고 언급했다.
시간이 없는 관계로 구체적인 설명 대신, 선교사들이 보건, 문화, 어려운 일들을 돌보는 이유 등 모든 것을 시작하여 대한민국을 굳건히 걸어가게 했다는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오늘 참석하신 분들께서 책자를 보시면 잘 알 수 있을 것이니, 잘 도와주시고 기도 해 주시기 바란다고 요청했다.
이후 문화체육 관광위원회 위원들에게 발언을 요청했다. 김교흥 위원장은 사실 오늘 인기총과의 환담회가 예정된 것은 몰랐으며, 위원들을 모신 것은 내리 교회가 역사적으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이자 선교사들이 첫발을 디딘 역사의 현장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아펜젤러 언더우드 선교 역사 기념관 건립은 인천 기독교 연합회가 교파를 초월해서 몇 년 전부터 기도하고 있는 사업이며, 이는 개인의 교회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역사이므로 위원회가 지원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 인사하는 아언역사문화기념관사업회 회장 이종복 감독
국민의힘 문체위 간사를 맡고 있는 원주 출신 박정하 의원은 자신을 소개하며, 이전에 인천에 근무했던 경험으로 인천에 대한 이해가 깊다고 밝혔다. 내리 교회에 와서 김흥규 담임 목사님의 설명을 통해 내리 교회 역사뿐만 아니라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역사에 대해 많이 이해하고 간다고 말했다.
아펜젤러⋅언더우드역사문화기념사업회 건립 사업에 대해 "저희가 여야 구분 없이 많이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라고 전하며, 이종복 감독께서 원주 출신의 어르신이라며 반가움을 표했다.

▲ 인기총 역사와 아펜젤러 언더우드기념관 건립 추진 현황을 설명하고있는 인기총 사무총장 김흥수 목사
박정하 의원의 발언 이후, 기독교의 성지 인천을 방문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하며 신바울 목사가 마침 기도를 하였다.
신바울 목사는 선조들이 아픔을 겪으면서도 지혜롭게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물려주었으며, 다음 세대에게 받은 은혜를 더 크게 확대하여 물려주어야 할 책임감을 언급했다.
정치, 교계 모든 분의 고민이 많지만, 하나님이 택하심에는 오류가 없음을 믿으며, 문화체육 관광위원회를 기억해 주시고 역사의 분기점 속에 좋은 결단과 미래 백년대계를 세워갈 수 있는 귀한 기회가 되도록 도와달라고 간구했다.
대한민국과 백성들을 축복하며, 공직으로 수고하는 국무위원들과 국회 위원들의 수고를 기억해 달라고 기도했으며, 역사 속에 있는 이 중요한 결정 속에 모두에게 지혜로움을 달라고 구하며 기도를 마쳤다.
이후 일행들은 교회 앞에서 기념촬영을하고, 도보로 답동성당을 시찰하러 발걸음을 옮겼다.
▲ 문화체육관광부 백중현 종무관(우)과 함께

▲▼ 전시관 등을 시찰하며 한국 기독교의 전례를 들으며 꼼꼼히 점검하고 있는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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