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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타홀 기념관 개관 4주년 기념 학술대회 성료, 통합 선교 유산 조명

곽영민 ·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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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타 홀의 의료선교사역은 선교회의 목적과 여성 해방 운동에 잘 부합

​복음, 교육, 의료 "헨리 아펜젤러 선교사와 닥터 로제타 홀이 남긴 통합 선교의 유산

 

로제타홀 기념관 개관 4주년 기념 학술대회 성료, 통합 선교 유산 조명

▲ 사회: 강경신 관장 

 

이번 학술대회는 로제타 홀 기념관 개관 4주년을 기념하여 진행되었으며, 선교사들의 귀한 유산을 조명하고 미래 선교의 방향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사회자의 인사말과 함께 행사가 시작되었다. 내빈으로는 인천시의회 박판순 의원, 기독병원 병원장 등이 소개되었다.

 

로제타홀 기념관 개관 4주년 기념 학술대회 성료, 통합 선교 유산 조명
▲ 축하공연: 
리멤버 1885​

 

축하 공연은 "리멤버 1885" 팀이 맡았다. 이 팀은 숭의교회 이선목 목사가 이끄는 팀으로, 지난 6월 19일 1885년을 기억하자는 의미의 공연을 했던 팀이다.

팀원으로는 음악 감독 최한성, 음악 선교사 조환곤, 기타리스트이자 작곡가인 김종문 집사이다.

첫 번째 곡은 로제타 홀 선교사를 기억하며 만든 곡이었다.

두 번째 곡은 1885년에 이 땅에 복음을 전하러 온 선교사들을 기억하며 만든 찬양으로, 최한성 감독이 6월 19일 공연을 위해 만들었다. 이 찬양은 "그 날을 기억하라"는 가사를 포함하며, 모든 이가 선교사들처럼 온 세상에 복음을 전파하는 역할을 감당하자는 소망을 담고 있다.

 

로제타홀 기념관 개관 4주년 기념 학술대회 성료, 통합 선교 유산 조명
▲
로제타홀 기념사업회 이사​ 이선목 목사

 

인천 서지방 정용인 감리사가 축사를 통해 로제타 홀 선교사의 여성, 아동,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깊은 사랑과 섬김을 기억하는 로제타 홀 기념관의 개관 4주년을 축하했다.

축사를 통해 강경신 목사님과 이사장님, 이사님들, 후원 기관 및 간사님들, 그리고 연구와 발표를 통해 새로운 사실과 도전적인 내용을 알려준 교수님들께 감사 인사를 전했다.

 

로제타홀 기념관 개관 4주년 기념 학술대회 성료, 통합 선교 유산 조명
▲ 축사: 정용인 목사(인천서지방 감리사) 

 

스크랜턴 선교사의 쟁기와 써레 이론을 언급하며, 병원 선교(쟁기)와 학원 선교(써레)가 복음의 씨앗을 심는 데 중요함을 강조했다.

로제타 홀 선교사가 시작했거나 영향을 끼친 병원으로 이대목동병원, 고려대 병원, 인천 기독병원을 언급했다.

특히, 이화여자대학교 의료원 홈페이지에는 로제타 홀 선교사에 대한 소개가 자세히 되어있으나, 고려대학교 의료원 홈페이지에는 로제타 홀 이름조차 첫 페이지에 없고 연혁에서야 '경성 조선 여자 의학 강습소'의 초대 소장으로 언급될 뿐 '선교사'라는 이름도 없음을 지적하며 아쉬움을 표했다.

인천 기독병원은 연혁이 1950년대부터 시작되지만, 김용기 원장의 인사말에 로제타 쇼우드 홀 선교사의 헌신과 사랑 정신을 바탕으로 설립되었음을 명시하고 있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로제타홀 기념관 개관 4주년 기념 학술대회 성료, 통합 선교 유산 조명
▲ 강연: 박형신 교수(남서울대학교) 

 

박형신 교수(남서울대학교)의 강연: "근대 동아시아 의료 선교와 로제타 홀"

로제타 쇼우드 홀(Rosetta Sherwood Hall)은 1890년에 내한하여 평양, 서울, 공주, 인천 등지에서 활발하게 의료 선교를 전개했으며, '평양의 어머니', '한국 여성 의료인 양성의 선구자', '한국 특수 교육의 어머니' 등의 칭송을 받았다.

 

홀에 대한 역사적 연구는 많이 축적되었고, 특히 최근 2년 동안 교회 사학자뿐만 아니라 고려대학교, 여성 의료인 양성 등을 주제로 한 사회 학자들이 좋은 논문을 발표하여 홀 선교사가 학계에서 주목받고 있음을 강조했다.

홀은 미국 북감리교회 여성해외선교회(WFMS)의 선교사였으며, WFMS는 여성 해방 운동의 일환으로 교회 내에서 여성 선교회를 만들어 교사나 의사 등 여성 선교 인력을 해외에 파송하는 데 가장 활발했던 교단이었다.

 

최근 양화진 기록관과 대구대학교 등에 로제타 홀 사료가 기증되어 연구 분위기가 활성화되고 있음을 언급했다.

이번 논문은 홀의 한국 내 활동을 넘어 근대 동아시아(중국, 일본, 한국)라는 더 거시적인 시공간 속에서 홀의 활동과 의미를 추적하고자 했다.

 

WFMS의 동아시아 의료 선교사 파송 상황 (1873-1895)

WFMS는 1873년부터 동아시아에 의료 선교사를 파송하기 시작했다.

중국에 22명, 일본에 1명, 한국에 4명의 의료 선교사를 파송했다.

한국의 첫 WFMS 선교사는 의사가 아닌 메리 스크랜턴 대부인이었으나, 그녀의 요청으로 메타 하워드(최초 여성 의사, 보구여관 설립)가 파송되었고, 이후 로제타 홀이 메타 하워드의 뒤를 이어 내한 했다.

 

홀 선교사는 1935년에 공식 은퇴했으나, 한국에서는 1933년에 떠났고 남은 기간은 안식년으로 처리되었다. 홀 선교사처럼 40년 이상 사역한 인물은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다.

 

WFMS는 여성 의과대학(펜실베이니아, 뉴욕, 시카고, 에나버 등) 졸업생 중 의사 면허를 취득한 여성들을 파송했다. 홀은 펜실베이니아 의과대학을 졸업 했다.

홀이 파송된 1890년 시점에 WFMS는 10개의 국내 지부를 운영했으며, 필라델피아, 노스웨스턴, 뉴욕, 신시내티 지부가 동아시아 지역에 많은 의료 선교사를 파송 했다. 홀은 뉴욕 지부에서 파송되었다.

 

중국인 후킹앵과 한국인 박에스더, 두 사람 모두 기독교 가정에서 성장했으며, WFMS의 후원을 받아 미국에서 의학 공부를 마친 후 본국으로 돌아와 의료 선교사로 활동했다.

박에스더는 로제타 홀의 조수로 일하다 홀의 도움으로 미국에 건너가 볼티모어 여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양에서 훈련된 최초의 한국 여성 의사가 되었다.

 

홀은 다른 여성 선교사들과 달리, 1892년 남편 윌리엄 홀과 결혼한 후에도 사역을 지속했으며, 1894년 남편 사망 후 3년간의 미국 체류 기간 동안에도 사역을 포기하지 않고 1897년 말 한국으로 돌아와 1933년까지 42년간 선교 활동을 펼쳤다. 이러한 장기간의 헌신적인 면모는 홀의 깊은 신앙과 정신을 보여준다.

 

홀 선교사는 1907년에 중국 의료 선교 협회(CMMA)의 회원으로 가입했다. CMMA는 의료 선교사들이 3년마다 만나 교육, 친교, 발전을 도모하는 단체로, 홀은 한국 지부가 만들어지기 전부터 회원으로 활동했으며, 나중에 협회 저널에 글을 싣기도 했다.

 

로제타 홀은 1914년 8월 11일부터 15일까지 평양에서 극동지역 시각 장애인 및 청각 장애인의 교육을 위한 제1회 연례 대회를 개최했다. 이 대회의 상세 내용은 홀의 동료 의료 선교사인 헌터 웰스와 중국에서 시각 장애인 학교를 운영하는 조지 프라이어 선교사의 보고서를 통해 밝혀졌다.

 

대회 구상은 1913년 여름 홀이 일본의 시각/청각 장애인 학교를 방문했을 때 시작되었다. 일본어 영자 신문 '서울 프레스' 편집장의 제안을 받고, 상하이의 시각 장애인 학교 운영자인 조지 프라이어 부부를 만나 대회 개최를 논의했다.

 

대회는 평양 감리교 컴파운드의 쇼우드 홀에서 진행되었으며, 중국, 일본, 미국에서 대표단이 참석했다. 유명한 헬렌 켈러에게도 초청장을 보냈으나, 그녀는 참석하지 못하고 대회가 잘 되기를 바란다는 전문을 보냈다.

 

대회 프로그램은 아홉 편의 발표와 다양한 모임으로 구성되었으며, 학술적이고 경험적인 깊이 있는 논의가 이루어졌다. 길선주 목사가 경건회를 인도했고, 일본과 중국에서 온 특수 교육 전문가들도 참여했다.

 

일제 총독부 관료들의 관여 문제: 당시 데라우치 총독을 비롯한 일본 식민 관료들이 이 대회에 관여했다. 이는 식민 통치자들이 특수 교육과 같은 비정치적, 비종교적 행사를 후원함으로써 침략자의 이미지를 개선하고 근대화라는 통치 명분을 강화하려는 의도가 있었음이 분명하다.

 

홀이 이 대회를 기획하고 실행함에 있어 일본 식민 정보와 일정한 거리 두기에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는 아쉬움을 표했다. 그러나 선교 현장에서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지역 관료들과의 관계 형성이 필수적일 수 있으며, 선교사와 일제의 관계 문제는 복잡하여 다양한 학문적 관찰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WFMS의 목적은 '여성을 위한 여성의 선교'로, 기독교 여성의 노력을 동원하여 여성 선교사를 파송하고 현지 기독교 교사를 지원하는 것이었다.

이는 근대 시기 서구에서 등장한 여성 해방 운동(직업화)과 인도 등지에서 남성 선교사가 접근하기 어려웠던 '제나나 선교'(여성이 거주하는 고립된 공간의 여성들을 위한 선교) 개념을 충실히 반영한 것이다.

 

로제타 홀의 사역은 이러한 선교회의 목적과 여성 해방 운동에 잘 부합한다. 그녀의 대표적인 사역은 여성병원, 시각/청각 장애인 학교, 그리고 여성 의료인 양성이었다.

특히 한국의 여성들은 사회적으로 소외되어 있었고 여성 의료인의 손길을 기다렸다. 홀은 평양, 서울, 재물포에서 여성병원 건설에 노력했다.

또한 시각/청각 장애인 학교를 시작하고 극동 차원의 국제 대회를 개최하여 장애인 교육에 대한 관심을 높였다.

 

홀의 최후 사역은 여성 의료인 양성이었다. 그녀는 자신과 동료 여성 의료 선교사들이 미국에서 여자 의과대학 훈련을 받은 것을 기억하며, 국내외로 재정을 마련하여 1928년 조선여자 의학 강습소(후에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으로 발전)의 탄생을 이루어냈다.

 

로제타홀 기념관 개관 4주년 기념 학술대회 성료, 통합 선교 유산 조명
▲ 논찬: 서형석 박사(연세대학교) 

 

서형석 박사(연세대학교)의 논찬

평양의 어머니 홀: 홀이 중국 여성 의료 선교사들과 다른 점이 단지 선교 기간뿐인지, 아니면 다른 체험이나 신학적, 신앙적, 의학적 지형이 있었는지, 그리고 홀의 한국 의료 선교가 중국 의료 선교와 어떻게 연속/단절되는지 추가적인 논의를 제안했다. 또한 홀이 협회 활동보다 현장 중심의 의료 선교를 펼쳤던 것이 아닌지 질문했다.

 

한국 여성 의료인 양성의 선구자 홀: 중국에 파송된 22명의 여성 의료 선교사 중 후킹앵 한 명만이 현지인 의료 선교사로 양육된 반면, 한국에서는 로제타 홀을 포함한 4명의 여성 의료 선교사 중 박에스더가 양육된 점을 들어, 로제타 홀의 한국인 여성 의료인 양성에는 뭔가 대단한 신앙적, 영적인 에너지가 있었을 것이라는 질문을 던졌다.

 

한국 특수 교육의 어머니 홀: 로제타 홀이 주최한 국제 대회가 친일적 영향을 띠었다는 지적에 대해, 홀 역시 정교분리 원칙을 따른 신학 교육의 영향이거나 보수 신앙의 세례를 받은 결과였을지, 아니면 진정 친일적 경향이 있었던 것인지에 대한 설명을 요청했다.

 

서영석 박사는 개인적으로 선교사들의 영향을 받은 한국 믿음의 선배들의 성서 해석 관점에 관심이 많다며, 로제타 홀이 미국에 체류했던 3년간 어떤 신앙적/신학적 도전을 받았는지에 대한 자료가 있다면 향후 연구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박형신 교수의 답변

박형신 교수는 서영석 박사의 논찬이 탁월하다며, 연속성과 불연속성에 대한 연구가 더 필요함을 인정했다. 또한 홀이 미국에서 3년간 머물며 남편의 전기를 쓰고 후원금을 모으는 과정에서 얻은 신앙적 깊이가 40년 활동의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라며 추가 연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선교사들이 일제 총독부와 관계를 맺는 것은 선교 활동의 최소한을 유지하기 위한 기본적인 관계 형성의 필요성 때문이었음을 설명하며, 이를 단순히 '친일' 여부로 단정하기보다는 복잡한 학문적 관찰이 필요하다고 재차 강조했다.

 

로제타홀 기념관 개관 4주년 기념 학술대회 성료, 통합 선교 유산 조명
▲ 강연: 임봉대 총장(헨리아펜젤러대학교) 

 

임봉대 총장(헨리아펜젤러대학교)의 강연: 복음, 교육, 의료 "헨리 아펜젤러 선교사와 닥터 로제타 홀이 남긴 통합 선교의 유산"

임 총장은 헨리 아펜젤러 대학교(구 미주 감리교 신학대학교)가 미주 지역에서 목회학 박사 과정을 운영하는 등 감리교 총회 소속 사계 신학대학교 중 하나임을 소개했다. 또한 자신이 과거 국제성서박물관 관장과 인천광역시 박물관 협의회장을 역임하며 로제타 홀 기념관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밝혔다. 특히 로제타 홀 기념관이 인천광역시에 정식 박물관으로 등록되어 폭넓은 활동을 펼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고 했다.

 

2025년은 헨리 아펜젤러 선교사 내한 140주년, 로제타 쇼우드 홀 박사 내한 135주년이 되는 해로, 이들의 선교적 유산을 조명하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아펜젤러의 복음 전파와 교육 사역, 로제타 홀 박사의 여성과 장애인을 위한 의료 및 교육 선교 사역을 중심으로 이들이 한국 근대 사회에 남긴 통합 선교 모델의 의미를 살펴보고자 했다.

 

두 선교사의 활동은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선교 전략 아래 유기적으로 작동했으며, 그 연결 지점으로 에스더 박(김정동)의 사례를 주목했다.

 

한국 감리교 선교는 1883년 로버트 사무엘 맥클레이의 한국 방문과 고종황제의 교육 및 의료 사업 허락으로 시작되었다.

1885년 첫 감리 선교사인 윌리엄 B. 스크랜턴 박사와 헨리 아펜젤러 목사가 한국에 파송되었다.

아펜젤러 부부는 1885년 4월 5일 부활주일에 제물포항에 도착했으며, 이수정이 번역한 마가복음 쪽복음을 가지고 왔다.

 

아펜젤러는 1885년 8월 3일 배재학당을 시작했으며, 고종으로부터 이름을 하사받았다. 그는 성경 번역에 참여하고 1887년 정동교회의 시작을 이끌었다. 아펜젤러의 사역은 교육과 복음을 연계한 통합 선교의 장으로 기능했다.

 

스크랜턴 박사는 1886년 6월 15일 첫 번째 감리교 진료소(시병원)를 열었으며, 고종황제가 '시병원'이라는 이름을 하사했다.

스크랜턴은 한국 문화상 남자 의사가 여자 환자를 진료하기 어려웠기에 여성 의사 파송을 요청했고, 이에 따라 메타 하워드가 한국 최초 여성 의사로 파견되어 1887년 보구녀관을 설립했다.

 

1889년 펜실베이니아 여성 의과대학을 졸업한 로제타 홀은 1890년 메타 하워드를 대신하여 한국에 왔으며, 보구녀관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1892년 윌리엄 제임스 홀과 결혼 후, 1893년 동대문 근처에 여성들을 위한 새로운 진료소인 볼드윈 진료소(후에 동대문 교회 시작)를 열었다.

1894년 평양으로 이주하여 여성 진료소를 열었으나, 중일 전쟁 발발과 남편 윌리엄 홀의 사망(1894년)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남편 사망 후 미국으로 돌아가 윌리엄 홀 기념 병원 건설을 위한 기금을 모으고 회고록을 출판했다.

1897년 한국으로 돌아왔으나 딸 에디스 마가렛이 사망(1898년)하는 슬픔을 겪었다. 로제타 홀은 딸의 이름을 따서 에디스 마가렛 아동병원을 지었고, 이는 1898년 광혜여원으로 발전했다.

로제타 홀은 또한 **한국 최초로 평양에 시각 장애인들을 위한 학교를 열었으며, 시각 장애인 학생들이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도록 도왔다.

 

로제타 홀이 서울에서 홀로 업무를 감당하기 어려울 때, 아펜젤러 선교사가 김점동(세례명 에스더)을 홀에게 추천했다.

에스더는 로제타 홀의 진료소에서 일하며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고, 1894년 로제타 홀의 도움으로 남편 박유산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갔다.

에스더는 리버티 공립학교와 볼티모어 여자 의과대학(현 존스홉킨스 의과대학)에 입학하여 서양 의학을 공부한 최초의 한국인 여성 의사가 되었다(1900년 졸업).

그러나 귀국 후 평양 등지에서 활동하다 1910년 폐결핵으로 사망했다.

에스더 박의 죽음은 로제타 홀의 아들 쇼우드 홀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그는 폐결핵 전문의가 되어 1928년 한국 최초의 근대적 결핵 요양원을 설립하고 크리스마스 씰을 도입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는 한국의 공공 보건 의료 운동으로 발전했다.

 

로제타 홀 박사는 1912년 한국 여성들을 위한 의료 학교를 평양에 열었고, 졸업생 중 3명은 경성의학전문학교(현 서울대 의대)에 합격했다.

1920년 서울에 또 다른 여성 의료 훈련학교를 설립했는데, 이 학교는 1928년 공식 의료 학교로 인가받았고, 후에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으로 발전했다.

1921년에는 인천 지역 가난한 여인들을 위해 인천 율목리 237번지에 부인병원(제물포 여자 진료소)을 열었으며, 이는 후에 인천 기독병원으로 발전했다.

 

아펜젤러와 로제타 홀은 직접적으로 함께 사역한 것은 아니었으나, 에스더 박은 이들의 교육과 의료 선교 분야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했다.

이 세 사람의 관계는 한국 초기 선교와 의료 교육의 역사를 깊이 있게 보여주는 복음, 교육, 의료가 하나로 연결된 통합 선교 모델이다.

 

로제타 홀과 에스더 박의 의료는 단순한 치료 행위를 넘어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여성과 사회적 약자의 존엄을 회복하는 사역이었다.

아펜젤러 선교사의 교육적 유산과 로제타 홀의 의료 선교 유산이 오늘날 여러 기관(헨리 아펜젤러 대학교, 로제타 홀 기념관 등)에 의해 이어져 협력한다면 새로운 선교적 비전의 지평을 열 수 있을 것이다.

 

역사는 과거 기록에 머물지 않고 미래를 위한 다리 역할을 하며, 통합 선교는 약자와의 연대, 사회적 복음, 공공선 추구의 관점에서 재해석되어야 한다.

 

로제타홀 기념관 개관 4주년 기념 학술대회 성료, 통합 선교 유산 조명
▲ 논찬: 홍민기 교수(명지대학교) 

 

홍민기 박사(명지대학교)의 논찬

임봉대 총장의 발표가 역사적 테마를 오늘날 선교학적 고민과 과제와 연결하려 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다고 평가했다.

 

일본 의료 선교사가 적었던 이유로 일본 정부 주도의 근대 개혁과 의료 사업 추진을 언급하며, 한국에서는 의료, 교육, 복음 전도 사역이 삼각축으로 이루어졌음을 강조했다.

내리교회, 숭의교회, 주안교회, 인천 부인병원(현 인천 기독병원)이 해방 전 '내리 구역' 안에 소속되어 있었음을 밝히며, 이들 기관이 복음 전도와 의료 선교를 함께 이루었던 역사적 장소임을 강조했다.

 

헨리 아펜젤러 대학교의 명칭 변경에 대해 질문하며, 1990년대 설립된 학교가 2020년 아펜젤러의 이름을 딴 것에 대한 역사적/정통성적 연결고리를 설명해 줄 것을 요청했다.

 

구약학자로서 임 총장에게, 아펜젤러-에스더 박-로제타 홀로 이어지는 통합 선교 모델에 대해 성서적 예시를 들어 설명해 줄 것을 요청했다.

 

임봉대 총장의 답변

홍민기 박사의 논찬이 자신의 발표에서 부족했던 부분을 정확히 지적하고 보완해 주었다며 감사했다.

헨리 아펜젤러 대학교의 명칭 변경 이유에 대해, 원래 미주 지역 목회자 양성을 위해 설립되었으나, 졸업생들이 선교사로 해외에 나가거나 한국으로 돌아와 사역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2020년 교단의 특성을 넘어선 선교적 비전을 가지고 아펜젤러의 이름을 따서 개명했음을 설명했다. 2023년에는 미주 지역에서만 목회할 수 있다는 단서 조항도 삭제되어, 학교 졸업생들이 어디서든 사역할 수 있게 되었다고 덧붙였다.

 

학교의 이름은 과거의 직접적인 관계보다는 헨리 아펜젤러 선교사의 선교적 비전과 꿈을 미래를 향해 펼쳐나가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으며, 10년, 20년 뒤에는 아펜젤러의 미래를 활짝 펼친 학교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성서적 예시를 통한 설명하기를 유다 지파와 출애굽의 예를 들었다. 다윗 시대 이후 유다 지파가 이스라엘 역사의 중심에 서게 되면서, 과거에는 큰 역할이 없던 유다에 대한 기록이 성경 곳곳에 나타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이는 과거 사건의 중요성이 아니라, 그 역사를 기록하거나 읽는 사람의 관점과 관심에 따라 의미가 부여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집트인들에게는 아무 의미 없는 노예들의 탈출 사건이었으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국가 탄생의 결정적 사건이 되어 성경에 중요하게 기록되었음을 예로 들었다. 오늘날 이집트가 이스라엘을 무시할 수 없는 것처럼, 과거에는 무의미했던 사건도 현재의 관계와 관점에 따라 중요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결론적으로, 아펜젤러와 로제타 홀의 관계를 과거 활동 시점으로만 보면 접점이 적지만, 오늘날 그들의 유산을 이어받은 기관들이 협력하여 공동의 비전을 추구한다면, 에스더 박의 작은 소개 사건조차도 귀하고 소중한 통합 선교의 상징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보았다.

 

역사는 단순히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미래를 위해 새롭게 쓰여지는 것이며, 헬리 아펜젤러의 교육적 유산과 로제타 홀의 의료 선교 유산이 협력하여 현대 선교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기를 희망했다.

 

로제타홀 기념관 개관 4주년 기념 학술대회 성료, 통합 선교 유산 조명
▲ 축도: 
늘푸른교회 김일준 목사​

 

사회를 본 강경신 관장은 광고를 통해 다시 한번 모든 참석자와 순서를 맡은 이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참석자들의 이름이 한 명 한 명 호명되었으며, 100명 분의 선물이 모자랄 정도로 많은 인원이 참석한 것에 대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했다.

 

이후 늘푸른교회 김일준 목사의 축도로 학술대회는 마무리되었다. 김일준 목사는 자신 역시 로제타 홀 박사가 세운 곳에서 태어난 사람이라며, 로제타 홀의 헌신적인 사역에 감사를 표했다.

 

로제타홀 기념관 개관 4주년 기념 학술대회 성료, 통합 선교 유산 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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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념관 전시물 

로제타홀 기념관 개관 4주년 기념 학술대회 성료, 통합 선교 유산 조명
 

로제타홀 기념관 개관 4주년 기념 학술대회 성료, 통합 선교 유산 조명
▲ 강사진들과 기념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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