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시절 대한민국➂ 학교 교실은 공나물 시루였다.
곽영민 · 입력 · 수정
70명의 아이들이 한 교실에 있었다
"베이비붐 세대가 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면서 학생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교실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오전·오후 2부제 수업이 널리 시행됐다."

1970년대 초 대한민국.
아침이 되면 아이들은 책가방을 둘러메고 국민학교로 향했다.
지금처럼 모든 아이가 같은 시간에 학교에 가는 시대가 아니었다.
학교에 도착하는 시간부터 달랐다.
학생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베이비붐 세대가 학교에 들어오면서 교실은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나누어 수업하는 2부제가 흔했고, 학교에 따라서는 3부제 수업까지 운영되기도 했다.
아침 일찍 학교에 가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점심 무렵이 되어야 책가방을 메고 학교로 향하는 아이도 있었다.
토요일도 학교에 갔다.
주 5일제라는 말은 아직 없었다.
토요일 오전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그때부터 아이들의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됐다.
그 시절 교실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있다.
바로 아이들의 숫자다.
한 교실에 70명, 80명이 넘는 아이들이 함께 공부하는 경우도 있었다.
말 그대로 '콩나물시루' 교실이었다.
나무로 된 책걸상에 두 명씩 붙어 앉았다.
앞뒤 간격도 지금처럼 넉넉하지 않았다.
뒤에서 앞으로 나가려면 친구의 책상 사이를 비집고 지나가야 했다.
교실은 늘 시끌벅적했다.
하지만 선생님이 교단에 서시면 금세 조용해졌다.
선생님이 칠판에 글씨를 쓰면 아이들은 공책을 펴고 받아 적었다.
지금처럼 태블릿 PC도 없었고 빔프로젝터도 없었다.
교과서와 공책, 연필과 지우개가 공부의 전부였다.
수업은 선생님이 설명하고 학생들이 듣고 외우는 방식이 중심이었다.
칠판에 적힌 내용을 받아 적고, 교과서의 내용을 읽고, 중요한 내용은 반복해서 외웠다.
때로는 선생님이 질문을 하면 수십 개의 손이 동시에 올라갔다.
교실이 좁았던 만큼 아이들은 서로 부딪히며 생활했다.
하지만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친구가 생겼다.
같은 책상에 앉은 친구와 공책을 함께 보고, 연필을 빌려주고, 준비물을 가져오지 않은 친구에게 자기 것을 나눠주기도 했다.
교실 안에서의 생활 자체가 공동체를 배우는 시간이었던 셈이다.
그 시절에는 국민교육헌장을 암송하고, 반공교육을 받는 것도 학교생활의 한 부분이었다.
지금과는 교육의 내용과 방식이 많이 달랐다.
하지만 당시 아이들에게는 그것이 학교였다.
그리고 학교가 끝나면 집으로 곧장 돌아가는 아이만 있었던 것도 아니다.
친구들과 골목으로 몰려갔다.
공터에서 공을 차고, 딱지치기를 하고, 구슬치기를 하고, 해가 질 때까지 뛰어놀았다.
부모님이 찾으러 나오셔야 집에 들어가는 아이들도 있었다.
학교에서 배운 것만큼이나 골목에서 배운 것도 많았다.
친구와 싸웠다가 화해하는 법을 배웠고, 동생을 챙기는 법을 배웠으며, 어른들에게 인사하는 법도 자연스럽게 익혔다.
그렇게 대한민국의 아이들은 학교와 골목을 오가며 자랐다.
세월이 흘렀다.
오늘날 초등학교 교실은 놀라울 만큼 달라졌다.
한 반의 학생 수는 크게 줄었고, 개인별 책걸상에 앉아 보다 넓고 쾌적한 공간에서 공부한다.
교실에는 컴퓨터와 빔프로젝터가 있고, 디지털 교과서와 태블릿을 활용한 수업도 이루어진다.
교사가 일방적으로 설명하는 수업에서 벗어나 학생들이 질문하고 토론하며 모둠으로 활동하는 수업도 많아졌다.
학교의 하루도 달라졌다.
과거에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학교에 갔지만, 이제는 주 5일제가 정착되어 토요일에는 학교에 가지 않는다.
예전에는 수업이 끝나면 골목으로 달려가던 아이들이 많았다면, 지금은 방과후학교와 돌봄, 늘봄학교를 이용하거나 학원으로 이동하는 아이들이 많다.
분명 세상은 좋아졌다.
교실은 넓어졌고, 학생 수는 줄었으며, 교육환경은 훨씬 편리해졌다.
아이들이 배울 수 있는 자료도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아졌다.
그렇다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는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잃었을까.
70명, 80명이 넘는 아이들이 한 교실에 모여 공부하던 시절.
한 책상에 두 명씩 앉아 서로의 공책을 들여다보던 시절.
토요일에도 학교에 가고,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과 골목으로 달려가던 시절.
그때의 아이들은 불편한 것이 많았다.
하지만 함께하는 것도 많았다.
친구가 많았고, 골목이 놀이터였으며, 동네 어른들이 아이들을 함께 돌보던 시절이었다.
지금의 아이들은 훨씬 좋은 환경에서 공부한다.
그러나 좋은 환경이 반드시 좋은 추억을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닐 것이다.
돌이켜보면 우리에게 학교는 단순히 공부하는 곳이 아니었다.
친구를 만나는 곳이었고, 사람을 배우는 곳이었으며, 세상으로 나가는 첫 번째 문이었다.
그리고 학교가 끝난 뒤 이어졌던 골목길의 시간은 우리에게 또 하나의 교실이었다.
수십 명의 아이들이 한 교실에 빽빽하게 앉아 있던 그 시절.
그 안에서 우리는 함께 웃고, 함께 배우고, 함께 자랐다.
지금은 교실에서 아이들이 훨씬 넓은 공간을 사용하지만, 그때의 교실에는 지금보다 훨씬 많은 사람과 이야기와 추억이 들어 있었다.
어쩌면 우리가 그리워하는 것은 낡은 책걸상이나 오래된 교실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곳에서 함께했던 사람들, 그리고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우리의 어린 시절인지도 모른다.

■ 시대의 기록
1970년대 초 대한민국의 학교는 급격한 인구 증가와 교육 수요 확대로 심각한 교실 부족을 겪었다. 이에 따라 오전·오후 2부제 수업이 널리 운영됐으며, 학교에 따라 3부제 수업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당시에는 학급당 학생 수가 매우 많아 한 교실에서 70~80명 이상의 학생이 공부하는 경우도 있었다. 교육은 교사 중심의 수업과 암기·반복 학습이 큰 비중을 차지했으며, 국민교육헌장 암송과 반공교육 등도 학교교육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오늘날 초등학교는 학생 수 감소와 교육환경 개선으로 학급당 학생 수가 크게 줄었으며, 디지털 기기와 다양한 참여형 수업이 활용되고 있다. 또한 주 5일제가 정착되면서 토요일 등교는 사라졌고, 방과후학교와 돌봄·늘봄학교 등 학교의 역할도 과거보다 다양해졌다.
시대가 바뀌면서 학교의 모습도 달라졌다.
그러나 한 가지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친구를 만나고, 사람을 배우고, 세상을 향해 한 걸음씩 성장한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