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시절 대한민국 ① 아침 7시 30분, 대한민국이 학교로 향하던 시간
대한민국생활문화사 · 곽영민 · 입력
그때 그 시절 대한민국 ①
아침 7시 30분, 대한민국이 학교로 향하던 시간
※ 필자는 1969년생이다. 그러므로 아련하지만 국민학교를 갓 들어간 저학년 시절부터 현재까지 기억 나는대로 기술하려 한다.
1977년 겨울, 인천.
아직 해가 골목 끝까지 들지 않은 이른 아침.
집집마다 굴뚝에서는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연탄불 위에 올려놓은 밥솥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고, 골목에는 된장국 냄새와 연탄 연기가 뒤섞여 겨울 아침 특유의 냄새를 만들었다.
그 시절 인천도 지금처럼 모든 집의 생활이 같지는 않았다.
동인천이나 제물포 일대의 형편이 조금 나은 집들은 이미 상수도가 들어와 수도꼭지만 틀면 물이 나왔다.
하지만 골목 안 단독주택이나 변두리 마을에는 아직 공동우물을 이용하는 집도 있었고, 마당 한쪽에 손펌프를 설치해 사용하는 집도 적지 않았다.
펌프를 쓰는 집의 하루는 **마중물**에서 시작됐다.
어머니는 양은 바가지에 담아둔 물을 펌프 입구에 천천히 붓는다.
그리고 무거운 쇠 손잡이를 힘껏 내렸다 올린다.
철컥…
철컥…
철컥…
몇 번을 움직여도 공기만 새어 나오는 소리가 들린다.
다시 마중물을 붓는다.
철컥…
철컥…
잠시 뒤,
콸콸콸——
맑고 차가운 지하수가 힘차게 쏟아져 나온다.
그 물로 쌀을 씻고, 세수를 하고, 학교 갈 준비를 했다.
겨울 아침이라 물은 손이 얼얼할 만큼 차가웠지만, 누구 하나 불평하지 않았다.
그게 우리의 일상이었기 때문이다.

▲ 이해를 돕기위한 이미지(코리아인사이트)
공동우물이 있는 골목은 조금 더 북적였다.
양은 양동이와 함지박을 든 아주머니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밤새 있었던 이야기가 오갔고,
"김 씨네 큰아들, 이번에 군대 간다더라."
"이번 주말에 김장한다는데 배추값이 또 올랐대."
아이들은 그 옆에서 물통을 들고 차례를 기다렸다.
공동우물은 단순히 물을 긷는 곳이 아니었다.
동네 사람들이 하루를 시작하는 사랑방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면 책가방이 기다리고 있었다.
네모난 책가방 안에는 교과서와 공책, 필통, 그리고 큰형과 누나에겐 어머니가 새벽부터 지어주신 따뜻한 도시락이 들어 있었다.
"영민아! 학교 늦겠다!"
어머니의 목소리에 책가방을 둘러메고 골목으로 뛰어나간다.
골목 어귀에는 이미 친구들이 하나둘 모여 있었다.
휴대전화도 없고 약속도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친구들은 늘 그 자리에 있었다.
"야! 빨리 와!"
한 친구가 소리치면 또 다른 친구가 달려오고, 그렇게 서넛이 모이면 학교까지 함께 걸어갔다.
학교 가는 길은 짧지 않았지만 지루하지도 않았다.
돌멩이를 차며 걷고, 전날 본 김일 프로레슬링 이야기를 하고, 숙제를 안 해 온 친구를 놀리며 웃다 보면 어느새 국민학교 교문이 보였다.
그 시절 우리에게 학교는 공부만 하는 곳이 아니었다.
친구를 만나고, 세상을 배우고, 꿈을 키우던 또 하나의 집이었다.
세월은 흘렀다.
공동우물도, 손펌프도, 연탄 연기도 대부분 사라졌다.
골목길은 넓은 도로가 되었고, 아이들은 친구를 만나기 전에 휴대전화부터 꺼낸다.
세상은 훨씬 편리해졌다.
하지만 문득 그리워질 때가 있다.
겨울 아침 펌프에서 흘러나오던 차가운 물소리.
공동우물에서 웃음꽃을 피우던 아주머니들.
그리고 골목 끝에서 들려오던 친구의 한마디.
"야! 학교 가자!"
그 목소리는 지금도 기억 속에서 가장 따뜻한 아침을 깨우고 있다.
■ 편집자 노트
이 연재는 '그때는 좋았고 지금은 나쁘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한 시대를 미화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살아온 시간 속에는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든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 있었습니다.
그 삶을 잊지 않고 기록하는 것.
그것이 「그때 그 시절 대한민국」을 시작하는 이유입니다.